나는 알코올 프리 근데 취해 (바질 향에)
2024.10.16. (수)
힝 요즘 수업 시간마다 선생님한테 혼난다. 나는 그냥 책으로 수업할 때가 가장 마음 편하고 좋은데 시작할 때 매일 ¿Qué cuentas?, ¿Qué tal?, ¿Qué pasa? 이런 거 물어보실 때가 제일 싫다! 저는 영어 중에서도 What's going on? 이 가장 싫단말이에요 와썹도 싫어요. 그래서 맨날 대충 오늘은 산호세가 좀 춥네~ 덥네~하면서 시작하는데 갑자기 날씨를 말할 때 사용하는 동사는 뭐지? 하시길래 estar..?라고 답했더니 hacer 지 hacer! 공부를 해야지 시험 하루 전에 와라락 공부할 거니! 하셨다. estar도 되잖아요!! 사실 hacer도 사용하는지 모르긴 했다. 책 보니까 있더라. 다른 나라에 계신 한국분에게 무서워요 수업 듣기 싫어요 했더니 우리 프로페소라가 이미 한국인들 공부하게 하는 법 알아버려서 더 그러시는 거라고 토닥해주셨다.
선생님은 바보! 하고 싶지만 초반에 수업이 끝나면 녹화본의 대본까지 다운로드하여서 몇 번씩 돌리고 다음날 수업 들어가던 그 열정이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바로 스타벅스로 향했다. 당장 내일모레 시험!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설 시간도 없다! 집 근처 스타벅스는 처음 와봤는데 누군가 외벽에 새가 커피나무 열매를 물고 있는 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다가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사진 찍어도 괜찮을까! 물어봤더니 그럼~하고 자리를 비켜주셨다. 사실 그리고 있는 모습을 찍고 싶었는데 그건 말할 줄 몰라서 포기하고 그냥 찍음.
안으로 들어와서 오늘의 커피는 따뜻한 것만 있냐 차가운 것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오늘의 커피 자체가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만 안되는 거냐고 했더니 기계가 어쩌고 했다. 선생님 제가 날씨 말하는 동사는 많이 몰라도 먹고 싶은 거 말하고는 삽니다? 그러면서 대체재로 아아를 추천해 주시길래 아아와 함께 지난번부터 벼르던 스모어 브라우니를 함께 주문했다. 커피는 맛없어서 충격을 받았고(심지어 나는 커피든 뭐든 맛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인데도 맛이 없었다! 1. 나도 느낄 정도로 커피가 너무 이상한 거였다. 2. 커피 맛의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멋진 코국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스모어 브라우니는 그냥 스모어 브라우니였다(따끈하고 쫀득하고 행복해지는 맛이었다는 뜻).
오랜만에 집중해서 9월 첫 수업부터 빠르게 수업 녹화본과 함께 수업이 끝날 때마다 보내주시는 메일을 쭉 읽어봤다. 그 시간들이 그냥 지나갔던 것 같은데 이렇게 되돌아보니 하루하루 뭔가 쌓이긴 했다. 그제 선생님이 입에서 웅얼거리지 말고 말을 뱉어서 하라고 하셔서 약간 상처받았는데 직접 들어보니 스스로도 뭐라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 사실 수업 시간에도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녹화 언어 설정을 확인하라고 떠서 슬프다. 스페인어가 아니라는 거지? 그러면서도 첫 수업을 돌려보니 프로페소라가 수업 목표를 읽어보겠니? 하고 다섯 번 말씀하시는데 못 알아듣고?_? 하는 표정으로 눈알만 굴리는 것이 약간 애처로우면서도 그래도 그 사이 조금 성장하긴 했구나 싶었다. 스스로 다시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직업인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abcd도 못 배운 저에게 수업 목표를 한 번 읽어보겠니~? 하고 스페인어로 말거신건 선생님이에요)
저녁 운동을 가기 전 집으로 향하는 길에 바질이 사고 싶어서 마트에 들렀다. 바질 페스토는 많이 먹어봤지만 지난 주말에 친구 집에서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고 생바질을 씻다가 향이 너무너무 좋길래 나도 한 번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또 따라쟁이처럼 토마토에 바질과 치즈까지 따라 샀다.
집에 들러서 급하게 냉장고에 물건들을 넣어두고 나와서 가장 늦은 저녁 7시 enternamiento funcional 수업에 참여했다. 근데 어제 그 춤 선생님이 또 수업하심. 수업을 몇 가지를 하시는 건에 용~ 처음 들어보는 수업이라 걱정했는데 여러 가지 운동을 짜주고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각자 파트의 운동을 하는 수업이었다. 또 아주 귀여운 학생이 처음 왔어? 하길래 이 수업은 처음이야! 했는데 갑자기 다른 아이가 함께 와서 얜 원래 왔었는데 너무 오랜만에 와서 거의 처음인데 어쩌고 해서 오~ㅎㅎ.. 하고 끝나버린 대화. 그래도 오늘 엄청 신나게 운동했다. 이 선생님은 항상 내가 걱정되는지 옆에 와서 열심히 챙겨주셔서 아주 감사하다. 그렇지만 오늘 스쾃 할 때 좀 더 가벼운 것을 바꿔들을래? 하는 것을 못 알아듣고 괜찮아! 했다가 아주 후회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크래커에 아까 사 온 바질과 토마토, 치즈를 올려서 먹었는데 역시나 바질향이 너무 아주 정말 좋아서 행복했다. 더 맡으려고 봉지에 코 박고 킁카킁카했는데 냉장고에 뒀다가 나중에 다시 열어보니 그새 향이 날아가서 아쉬웠다. 친구가 바질을 많이 먹으려고 키우는 것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는 얘기도 이해가 되고 또 전에 책임님이 집에서 직접 바질을 키워서 페스토를 만들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도 다 이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