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글주의
2024.10.27 (일)
거의 트라우마급이라 순간순간을 상기해 쓰고 싶지 않지만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엄마 아빠는 혹시라도 보게 된다면 읽지 말 것. 눈물 나~
22시 산호세에서 버스를 타고 23시 알라후엘라 정류장을 마지막으로 여행지로 향했다. 자정을 넘어 새벽 1시에서 2시 즈음 핸드폰 신호도 연결되지 않는 쉘터에 도착했다. 밖은 가로등도 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는 길 내내 잠을 자려고 했지만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계속 말을 걸어대는 탓에 거의 자지 못했다. 그러면서 전자 담배를 계속 피우길래 코스타리카는 전자 담배는 버스에서 펴도 괜찮은가 보다 했다. (아니었다.) 앞자리 사람들이 기사님에게 담배 어쩌고 이야기하길래 그래! 항의하자! 했는데 알고 보니 본인도 피고 싶다는 것이었다. 기사님이 안된다니까 그 뒤로 5분마다 한 번씩 사람들이 번갈아가며 손들면 차를 멈춰서 전자 담배 피우는 시간을 줬다. (???)
옆자리 친구가 오는 내내 자꾸 한국어로 이건 어떻게 말하냐 저건 어떻게 말하냐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지쳤는데 술에 취한 상태였다는 것은 쉘터에 도착한 뒤에 빛이 있는 곳에서 얼굴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얘 너무 취했어~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친구조차 만취상태였다. 투어에 신청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이드의 친구의 친구 동생 부부의 오빠.. 와 그 친구였나 아무튼 여긴 뭔가 이렇게 건너 건너 연결되어도 다 같이 지내는 것이 신기하다. 예를 들면 친구의 전여친(부인) 전남친(남편), 그 친구 등을 그룹에 포함시켜서 다 같이 계속 잘 지내는 것 같다.
간이 쉘터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무한 대기 시간을 가졌다. 중간중간 인솔자가 들어와서 스페인어로 설명해 주는데 무엇을, 왜, 언제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왜 이 밤에 모이게 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온 것부터가 문제였다. 인터넷은 무슨 핸드폰 시그널도 전혀 없고 비도 점점 많이 내리고 불안해져서 뒷자리 사람들에게 ¿Habla inglés? 해서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아 상황을 물어봤다. 원래 지금 산을 오르기 시작하는 계획이었는데 (???) 밖에 비가 많이 와서 어두운데 비까지 내리면 너무 위험하니 비가 덜 내리길 기다리거나 비가 계속 온다면 아침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이 시즌에, 이 시간대에 비가 이 정도 오리라는 것은 예상되었던 일 아닌가? 그렇게 약 새벽 3, 4시 즈음까지 뒷자리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산호세 옆의 까르따고에서 온 친구들이었는데 동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났다. 산호세는 코스타리카 최악이다, 너무 못생겼다! 하며 꼭 까르따고에 와보라고 했다. 팔에 입장 팔찌를 차고 산에 들어선 것이 새벽 4시 즈음되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바닥은 질퍽거렸다. 일출 전이라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준비물에 랜턴이 있었지만 핸드폰 플래시로 충분하리라 생각했고 혹시 등산화를 준비해 가야 할지 문의했으나 새 신발이 아니라면 일반 운동화도 괜찮다는 말에 유일하게 갖고 있는 운동화-구멍이 뚫린 매쉬 소재의 운동화를 신고 갔다. 전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이미 입구에서 발이 잘 빠지지도 않는 진흙탕에서 여러 번 넘어져서 옷과 가방을 전부 버렸다. 출발한 지 10분도 안되었는데 앞이 보이지도 않고 이미 양말까지 전부 젖었다. 마곡 사무실에 출근하는 날 비가 오면 셔틀버스에서 내려 사무실까지 걸어가는 그 5분 사이에 신발과 양말이 조금 젖으면 하루종일 재택할걸! 했던 날들이 있었는데, 이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까 뒷자리에 있던 친구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가방에서 스페어 랜턴을 꺼내서 손에 쥐어주었다. 조그마한 빛이 생겼다고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조금 나아진 발걸음으로 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따라붙었다.
상쾌까지는 못했지만 처음 한 시간은 너무 나쁘진 않았다. 가면서 친구가 우리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하하 그럼 우리 부모님은 바로 못 오시니까 너희들 부모님한테 부탁 좀 하자~하하 웃으면서 따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졌는데 당연히 그런 건 없어요~ 진짜 더 이상 못 가겠다 싶을 즈음 작은 쉬는 공간이 나왔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니 세상이 밝아져 있었다. (실제로 해가 떠서 밝아졌다는 것.) 이때 그냥 이곳에서 사람들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겠다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이제 앞으로 대여섯시간 정도 올라가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내가 스페인어를 잘못 들었겠지 싶었다. 그래서 옆 친구에게 다시 물어보니 우리의 속도에 달려있다고 했다. 그렇지? 다섯 시간 더 이 진흙에서 미끄러져야 한다는 건 아니지? 맞았다. 그렇게 새벽에 출발해 거의 정오까지 비를 맞으며 질퍽한 진흙길에 발을 담그며 산을 올랐다. 한국에서부터 등산을 아예 안 하던 편도 아니고 그 외에도 운동도 꾸준히 해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못 가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따라오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갔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냥 기초 체력이 남다른가? 뒤에서 따라오는 입장이 되면 몸도 마음도 더 힘들 것 같아서 최대한 첫 번째 그룹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붙어있었다.
이렇게 한 문단으로 요약할 여정이 아니었는데,
1. 한국이었으면 사람들이 고소하지 않았을까? (인솔자의 케어가 전혀 없었고 모든 상황이 매우 위험했다.)
2. 이 투어 자체 보험은 들어져 있는 건가, 한국에서 보험을 더 비싼 걸 들고 올 걸, 내 보험이 언제까지 어느 범위까지 커버되는 것이었지?
3. 이따 올라온 만큼 또다시 내려가야 한다는 거지? 올라가는 길도 이렇게 미끄러지는데 내려가는 길은 훨씬 위험할 텐데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4. 배고프다. 다들 어제저녁 먹고 이따 점심 줄 때까지 이 체력 소모를 하면서 어떻게 버티는 거지?
5. 엄마가 요즘 본다는 강철부대 W에 한국 대표로 나와서 코스타리카 사람들만 다 살아남고 내가 마지막 생존자라고 생각하자..
를 반복적으로 돌리며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서 꼭 꼭 꼭 일기에 구구구절절절 써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을 울면서 걷고 넘어지다 보니 뭐가 보이긴 보였는데 그저 산이었다. 여기가 종착지인 분위기였다. 다 같이 사진을 찍고 일부는 더 올라갔다. 여기서부터 사람들이 지쳐서 일부는 내려가고 일부는 더 올라가고 일부는 이곳에 남아있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인솔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인솔자라는 게 그냥 내 또래 여자애들 몇 명이었다. 그중 제대로 길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그 한 명 조차 계속 오른쪽! 오른쪽! 하더니 오른쪽으로 계속 가다 보니 아무래도 길이 없어서 이상한데.. 했더니 앗 왼쪽인가 보다~하고 돌아가기도 했다.
나도 선발대 사람들을 따라 좀 더 올라갔는데 그게 거의 암벽등반 수준의 돌이라서 너무 위험했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으로 눈을 뜨기도 어려웠다. 결국 중턱에서 다른 커플과 함께 앉아 다른 사람들이 다녀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온몸이 젖어있는데 특히 나는 수족냉증이 심한데 그 위에 계속 비와 바람을 맞으니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손까지 진흙으로 범벅되어 얼어있었다. 바람을 너무 맞아서인지 이 상황 때문인지 눈물이 찔끔 나올 즈음 저 멀리서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고 우리도 슬 내려가기 시작했다.
올라올 때 다섯 시간 정도 걸렸으니 한 3시간이면 내려갈 수 있겠지? 하는 희망을 갖고 하산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내려가는 길은 훨씬 위험했다. 너무 많이 미끄러져서 그냥 나중에는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괜찮아? 괜찮아? 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다들 너무 넘어져서 서로 신경도 안 썼다. 그러다 아까 같이 기다리던 커플 중 여자분이 점프해 내려가는 중에 잘못 넘어져서 골반을 다쳤다. 남편이 같이 와서 옆에서 케어를 해줬다. 나랑 동갑인 여자분이었는데, 아까 만취해서 한국어 가르쳐달라고 하던 남자의 여동생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더욱 잔뜩 긴장해서 걷기 시작했다. 전 케어해 줄 남편이 없어요.
처음처럼 발에 진흙과 물이 안 들어와서 발에 감각이 없어진 것인 줄 알았는데 진흙이 들어오고 굳고 위에 물이 쏟아지고 또 굳고 해서 나름의 보호 신발이 완성된 것이었다. 그래서 종아리까지 빠지는 진흙탕도 신경 쓰지 않고 최대한 넘어지지 않는 길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 진흙탕 물이 신발에 들어오고 바지에 범벅되는 느낌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맨몸으로 걸어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준비물에 2L의 물(!!!), 갈아입을 옷, 수영복, 랜턴 등 너무 많은 것들이 있어서 가방까지 무거워 허리가 너무 아팠다. 그 위에 진흙이 묻은 것이 또 굳어져 가방과 바지, 신발 모든 게 점점 더 무거워지기만 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긴장하고 걱정하는 것은 나 혼자였다는 것이다. 다들 넘어지면 오 이번엔 바지 안 닿고 가방으로 넘어졌다! 하고 누워서 다 같이 웃고, 인생에 다시없을 경험이다! 하면서 하산하고 있었다. 나중에 내려와서 다른 친구들한테 이 이야기를 해줬는데 넘어지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면서 이 모든게 코스타리카 사람들다운 행동과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만 생과 사를 넘나드는 것 같고 나만 너무 힘든가? 했는데 나랑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앞에서 걷던 친구도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더 이상 걸을 수 없다며 열 걸음에 한 번씩 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와 우리 나중에 이거 손자 손녀에게까지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다! 하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 때 생각이 났다. 당시 산장팀과 마을팀 두 개로 나눠서 산장팀은 어느 정도 산을 직접 타고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마을팀은 케이블카를 타고 왕복 이동하며 마을에서 지냈는데 나는 원래 산장팀이었다가 당시 무릎에 부상을 입어 마지막에 마을팀을 바꿨다. (당시 산장을 취소하고 마을 숙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폴폴킴이 독일어로 전화해서 처리해 줬던 것이 생각난다. 스페인어도 잘하는 폴폴킴..¡Te necesito!)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마을팀과 달리 산장팀 친구들은 하산하는 길에 엉덩이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려왔을 때 이탈리아가 아니라 스위스일까봐 걱정했다며 같이 돌로미티에 오지 않은 친구들과 부모님에게 연락이 안 닿으면 대사관에 신고해 달라고 이야기해두었다는 말만 전해 들었는데 이런 비슷한 상황이었을까 싶었다. 그래도 한국어로 대화하면서 친구들과 내려올 수 있었더라면 나도 좀 더 하하 설마~하면서 내려올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걷고,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반복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길을 잘못 들었나 무서워 그 자리에 서서 사람을 기다렸다. 그러던 중 멀리서 차가 보였다. 여기 차가 다닌단 말이야? 그럼 태워줘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우리를 태우러 온 차였다. 농활도 한 번 못 가봐서 살면서 트럭 적재함에 처음 타봤다. 거기에 타서 뒤늦게 내려오는 사람들을 모두 기다렸다가 5분 정도 달려 샤워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여기서 샤워요? 도저히 이 진흙 그 자체인 몸으로 산호세까지 돌아갈 수는 없으니 바지와 양말만 처리했다. 그렇지만 다시 그 신발을 신으니 그게 그거였다. 보이는 진흙을 아무리 씻어내도 진흙이 본체가 되어 나아질 수 없었다.
이 상태로 집까지 가야 하는 거구나 하는데 옆에서 사람들은 다들 정말 머리까지 감고 새로운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저 빼고 단톡 만드신 거죠??? 나한텐 등산화도 안 신어도 된다고 하더니만 자기들은 갈아 신을 운동화까지 챙겨 오다니! 모두가(난 아님) 어느 정도 리프레쉬되어 점심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점심은 그냥 항상 먹는 카사도 (콩+밥+고기+구운 플렌테인(바나나)+샐러드)였다. 특이하게 작은 술잔에 단 술을 한 입씩 먹었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초반까지는 어느 정도 영어로 소통해 주더니 이제 다들 너무 지쳐서 스페인어로만 모든 대화가 이뤄졌다. 나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어 내심 편하기도 했다. (사실 듣는 척하면서 모자 쓰고 눈감고 잤다. 어차피 산호세 못생겼다. 까르따고 짱, 알라후엘라 짱하는 이야기였다.)
사실 당초 목적지로는 Cañón de Mordor, Volcán Poás y Catarata Caída del Cielo 이렇게 세 군데가 있었는데 지금 우리가 여길 다 본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수영복도 준비물에 있어서 챙겨 왔기 때문에 설마 밥 먹고 폭포에 가서 수영하나???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 수영복을 꺼낼 일 없이 점심을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여전히 신발과 몸이 젖어있었기 때문에 덜덜 떨면서도 또 몸은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며 돌아왔다. 오는 길에 한국어로 자꾸 숫자 물어보던 친구도 조용해진 고요한 차 안이었다.
그렇게 산호세에 다시 도착하니 너무 예쁘게 노을이 지고 있었다. 길을 가던 사람들 모두 멈춰 돌아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니 3시면 산호세 도착한다면서요~ 해가 지고 있잖아요.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그저 집과 가까워졌다는 생각 하나에 기뻐 내려서 나도 노을 사진을 찍겠다고 오랜만에 핸드폰을 꺼넀는데(손을 포함한 온몸에 진흙이 묻어있어 핸드폰 꺼내지도 못함.) 바로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뜨려서 액정이 깨졌다! 야호! 뻥이고 액정 위 붙여놓은 스티커가 깨졌다.
우버를 부르려다가 이 몸으로 누구 차에 타는 건 아닌 것 같아 남은 체력을 긁어서 버스에 탔다. 눈에 익은 동네에 오니까 몸에 힘이 다시 돌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육체적인 체력을 바닥까지 쓴 게 아니라 그냥 그 키를 잃어버린 그 순간부터 쫄아서 지난 24시간 몸도 마음도 굳어있던 것 같다. 혹시 몰라 이거 우리 집 가는 거 맞죠? 하면서 탔는데 버스 아저씨가 안 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태깅은 되었으니 돈은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이거 우리 집 가는 거 맞잖아요! 그냥 탔더니 역시 집에 잘 데려다줬다. 내가 역 이름을 잘못 말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더러워 보였을지도.. 서서 갈게요..)
한 정거장 미리 내려서 마트에서 탄산음료를 하나 사서 마셨다. 저녁에 뭘 먹겠다는 원대한 계획이 있었는데 집으로 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누워서 탄산음료에 과자를 냠냠 먹으며 이게 현실인가 천국 인가 하다 눈을 감았다 뜨니 이미 새벽이었다. 요 저녁 식사 계획은 내일 저녁에 실천하는 것으로 미루고 쌓여있는 스페인어 과제를 위해 빨리 마저 남은 잠을 해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