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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림 ComfyForest Oct 24. 2021

소시민의 소소한 소회(11)

열차는 알이었고 요나는 알을 깨고 나온 비둘기, 아브락삭스였다.

설국열차


1, JUSTICE(정의/공평성/정당성)


영화를 다 보고 났더니 포스터를 선택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영화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다. 그래서 수많은 리뷰어가 각자 왜 이 영화가 싫은 지 혹은 좋은지에 대해 자신들이 알고 있는 온갖 언어적인 표현을 총동원해 자신의 의견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끌고 설득하려 한다.


나 역시 지금까지 그런 리뷰들을 써 왔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내게 그러한 리뷰를 쓸 수 없게 만들었다. 왜냐하면 영화는 열차의 칸 수, 혹은 객실 수만큼 많은 메타포와 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어떤 한 시점만을 선택해 리뷰를 쓸 수 없는 내용이었다. 포스터를 선택할 수 없는 이유와 부합한다.  



영화 속에서 윌포드가 이야기해 듯 기차는 축소된 세계이다. 하지만 인간들로만 이루어진 세계, 즉, 생태계 먹이사슬 중 포식자, 그중에서도 최상에 위치한 인간들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약육강식으로 자연스럽게 개체수를 조절해 가는 정상적인 생태계가 아니다. 또한 개체수를 조절해 줄 강자가 없다 하더라도 생태계에서는 Cosmic intelligence(우주적 지능) 라 하여 자연적으로 개체 수를 조절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자살 쥐라 불리는 레밍이 몇 년에 한 번씩 개체수 조절을 위해 절벽으로 뛰어드는 것처럼.  


하지만 열차에서 나고 자란 인간들보다 열차를 타기 전 Justice(정의)의 개념을 교육받았던 인간들이 많았던 열차 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불가능했다. 식인을 멈출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열차에서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려는 인간과 벗어나려는 인간이 대립하며 Justice(정의)의 개념은 흐려진다.  



2.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처음 기차를 탈 때는 사회적 지위, 권력, 돈 등 앞 칸을 차지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17년이 지나자 이러한 조건들은 그 의미가 퇴색되고 총과 엔진만이 앞 칸의 조건이 되었다.  


꼬리칸 사람들이 앞 칸 군인들의 총에 총알이 없음을 알자 앞 칸으로, 엔진으로의 진격을 행할 수 있었던 이유이며 앞 칸에서는 임산부 교사마저 총을 휘두르는 이유가 된다.  



영화를 관람하면 알 수 있겠지만 꼬리칸에서 앞 칸으로 갈수록 인류의 발달사가 나타난다. 꼬리칸의 오로지 생존만을 위한 생활에서부터 앞 칸으로 갈수록 먹거리가 안정되며 나타나는 카페나 스파 등 유흥문화에서 마지막에는 술과 마약과 광기에 의지해 피폐해져 가는 향락문화까지. 열차는 유토피아를 지향했으나 결국 디스토피아를 향해 달려간다.


윌포드는 열차 속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절이 필요하다고 커티스에게 당위성을 피력한다. 결국 커티스와 윌포드의 Place가 달라진다 해도 열차 속 세계는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윌포드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열차 밖으로 나간다면?이라는 전제이다.


3. 요나


처음 요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요나라는 인물을 떠올렸다. 니네베에서 설교하라는 신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을 치다 고래에게 먹혀 고래 뱃속에서 3일 후 나와 신의 명령을 수행한 인물이다. 열차 속에서 나왔으니 관계가 아예 없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 요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비둘기를 뜻한다는 것을 이 리뷰를 쓰면서 처음 알았고 그래서 갑자기 등장한 소품인 달걀의 의미까지 유추하게 되었다.


영화 중간에 갑자기 등장한 달걀 바구니를 보며 부활절 달걀을 의미하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시기적으로 부활절이 아니어서 의아했다. 그래서 그보다 데미안의 아브락삭스를 떠올렸다.  


요나는 바로 열차라는 껍질(하나의 세계)을 깨고 나온 아브락삭스이자 동시에 노아의 방주에서 노아가 물이 다 빠졌는지 알아보기 위해 날려 보낸 비둘기인 것이다.


열차에서 살아남은 것이 요나와 티미뿐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다른 생존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요나는 그들을 위해 먼저 나온 전령사이자 인류의 부활을 알리는 메타포라 여겨진다.


4. 나는 어느 칸에 속해 있나???


많은 리뷰들에 영화가 서열에 의한 자리매김. 그래서 억압받은 민중이 착취자들에 항거해 앞으로 나아가는, 커티스가 선, 윌포드가 악이라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봉준호 감독이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열차 밖으로 나가느냐, 나가지 않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열차 속 서열에 의한 세계는 이미 그 의미를 잃고 있다.


또한 열차 속 세계는 윌포드와 길리엄의 관계가 보여 주 듯 Good(절대 선)과 Evil(절대 악)이 아니라 선택에 의한 Good(잘 된)과 Bad(잘못된)인 것이다.


이 영화에서 꼬리칸이든 앞 칸이든 스스로를 투영해 버리면 기분이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 나는 이 칸들은 현재 우리 사회, 혹은 국가, 혹은 인류가 어느 위치에 있는 가를 확인해 보라는 의미라 여겨졌다. 그리고 언제든 껍질을 깨고 나갈 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5. 의문점


열차 속 세계가 17년이 지난 이유에 대해서는 커티스가 열차 생활 전이 17년, 열차 생활 후가 17년, 그리고 18년 째를 맞이하면서 균형이 깨진 것을 의미한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납득했으나, 인구의 74%를 없애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봉 감독님께 물어보고 싶음.


또한 봉테일이라 불릴 만큼 디테일한 봉 감독이 왜 형 프랑코는 어이없게 계속 살아나게 했는지도 정말 궁금하다. 이 인물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또 송광호 씨가 맡은 남궁민수. 문을 열고 세계를 깨는데 중요한 인물이었는데... 쪼끔 더 임팩트 있게 그릴 수는 없었을까...   


이외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궁금한 점도 많지만... 일단 여기까지.  


여러 가지 개인 사정 때문에 개봉 시기에 보지 못하고 막바지에 보게 된 영화지만 보기를 정말 잘했다. 원래 봉준호 감독 팬이었기에 팬인만큼 실망도 하게 된다는 평들에 악평이 너무 많아 고민하긴 했지만 영화 초반에 이미 그런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릴 수 있었다.


그에게 조금 더 시간과 돈이 허락했다면 훨씬 깊이 있는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의 차기작이 또다시 기대된다.


뱀발 1: 커티스 역의 크리스 에반스와 윌포드 역의 에드 해리스가 연기를 너무 잘해 완전 깜놀! 봉 감독은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역에 그들의 감성이 녹아들 수 있도록 지도했을까. 그들은 아마 그들의 필모 그래프에 설국열차가 들어간 것을 무진장 자랑스러워할 것 같다. 틸다 스윈튼도 마찬가지. 대체 누가 그녀의 연기에 악평을 쏟아내는가? 그녀의 찌질 연기는 완전 캡이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우아해 보이는 그녀가 그런 찌질 연기를 완벽히 소화해 내다니!


뱀발 2: 넷플릭스에서 만들어진 드라마화된 설국열차는 아직 보지 못했다. 봐야 하는데...


https://tv.kakao.com/v/50820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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