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고 싶을 때 잔다.
이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한 문장은, 듣기에 따라 어쩌면 당연한 소망처럼 보이지만 실제 삶에서는 실현하기가 쉽지 않은 자유를 상징한다. 우리는 흔히 “잠이 보약”이라고들 말하면서도 정작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들은 늦은 밤까지 업무나 과제에 매달려야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다음 날 아침에 있을 일정 때문에 눈을 붙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고 싶을 때 잔다”는 말은 마치 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 안에는 내 몸과 마음이 정말로 원하는 순간에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택할 수 있는 삶을 살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정신적·육체적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무언가에 몰두하고 몰아붙이다가 어느 순간 힘이 다 소진되어 버리는 상황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때 몸과 마음이 동시에 지쳐버린 상태에서는, 잠을 잔다 해도 피곤이 쉽게 가시지 않으며 온전한 휴식을 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에게는 지칠 때 적절한 타이밍에 스스로를 회복시킬 권리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직장이나 학업 등 여러 의무에 묶여 원하는 때에 마음 놓고 잠들기란 쉽지 않다.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가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행위가 단순히 ‘편히 쉰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외부의 강제나 환경적 압력보다 자기 필요를 우선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좀 더 편하게 쉬고, 스스로가 원하는 시간에 잠들 수 있는 삶”을 동경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구체적인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을 때에는 오히려 긴장만 가중되기도 한다.
결국 “자고 싶을 때 자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조건이 필요하며, 이를 갖추는 과정에서 ‘공부’가 큰 몫을 담당한다. 공부는 단순히 시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식을 쌓고 기술을 익히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과정 전체가 곧 공부다. 이 힘이 쌓일수록, 원하는 순간에 나를 옭아매는 외부의 제약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결국 “자고 싶을 때 자기 위해 공부한다”는 말은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준비한다는 뜻과도 맞닿아 있다. 비록 평소에는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아 힘에 부칠 수도 있지만, 그런 노력이 축적되면 언젠가 “오늘은 정말 피곤하니 잠시 쉬자”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삶이 찾아온다. 다시 말해, 공부는 단지 자격을 얻거나 정보를 습득하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진정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설계하고 구현해 나가는 바탕이라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겉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는 일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남들 눈에는 “잠 좀 자는 게 뭐 대단하냐”는 소리가 돌아올 수도 있지만, 원하는 시간에 편히 눈을 붙일 수 있으려면 상당한 환경적·심리적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열쇠가 바로 공부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의 공부가 훗날 어떤 결실을 맺을지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며, 어제보다 한 걸음 발전한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자 ‘역량’이 되어 준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자고 싶을 때 아무런 부담 없이 잠자리에 드는 순간, 우리는 그제야 “왜 공부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변을 내놓게 될 것이다. 결국 “자고 싶을 때 잔다”는 결심은 자신을 돌보는 삶을 향한 용기 있는 선언이자, 그 삶의 기틀을 마련해 주는 공부의 참된 가치를 일깨워 주는 목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