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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할까-21

깨어있게 하는 힘

by DE

깨어있게 하는 힘

자정이 넘은 시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고요한 밤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불을 밝힌 채 깨어 있다. 원래라면 이 시간,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무의미하게 멍하니 하루를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깨어 있게 붙잡아 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공부’다.


잠과 각성 사이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피로한 몸은 하품을 쏟아내며 잠을 부추긴다. 잠의 유혹은 이토록 달콤하고 강렬하지만, 나는 그 유혹을 가만히 넘긴다. 책상 위에는 오늘 공부해야 할 책과 노트가 펼쳐져 있다. 책을 마주한 순간, 아까까지 흐릿하던 의식이 서서히 초점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단어 하나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정신이 흐릿하다. 그러나 몇 번이고 같은 문장을 읽어나가는 사이, 점차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이해하려는 의지가 게으름을 몰아내고, 새로운 지식을 향한 호기심이 졸음을 밀어낸다. 조금씩 마음이 밝아지며, 스스로도 모르게 흐트러졌던 자세를 바로 세운다.


피로를 넘어서는 집중

공부에 한 번 몰입하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피곤했던 몸은 잠시 잊힌다. 집중이라는 힘은 육체의 무거움을 거뜬히 넘어선다. 몇 시간째 깨어 있었던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문제 하나를 더 풀고 문장 한 줄을 더 읽는다. 창밖에 깔린 밤의 적막도, 시계의 초침 소리도 어느새 잊혀진다. 오로지 눈앞의 과제와 지식만이 내 남은 에너지를 모두 이끌어낸다.


어려운 문제를 마침내 풀어냈을 때 느끼는 작은 성취감은 졸음보다 강한 아드레날린을 선사한다. 방금 전까지 기지개를 켜며 졸던 내가, 어느새 눈을 반짝이며 다음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집중의 쾌감은 피곤함을 압도하고,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깨어 있음의 능력을 발휘한다. 열의에 가득 찬 집중은 피로라는 벽마저 넘어 내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등을 떠민다.


무의미한 시간에서 의미 찾기

만약 내가 지금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 시간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아마도 의미 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혹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잠들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밤과 새벽의 귀한 몇 시간은 그저 흐릿한 기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지식을 쌓고, 이 순간들을 가치 있는 경험으로 채우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무심히 흘러갈 뻔했던 시간이 의미를 품기 시작한다. 무의미와 유의미의 갈림길에서, 공부는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 준 셈이다. 훗날 돌이켜보았을 때, 이 시간은 분명 보람찬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흐릿한 시간에서 벗어나

일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는가? 루틴에 젖어 멍하니 보내는 순간들은 마치 안개 속을 거니는 것처럼 흐릿하기만 하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는 찰나, 나는 안개 속에서 길을 찾은 사람처럼 의식이 선명해지는 것을 느낀다. 공부는 흐릿하게 스쳐 지나갈 뻔한 시간을 붙잡아, 나의 정신을 현재로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종종, 공부에 몰두하는 그 순간들 속에서 다른 어떤 때보다도 내가 살아 있음을 강하게 느낀다.


이렇듯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은 단순히 지식을 얻는 것을 넘어, 일상의 흐릿함에서 나를 구해내는 각성의 순간이다. 한 줄의 문장을 이해하는 동안에도 내 의식은 또렷이 현재에 머물고, 삶의 일부가 온전히 내 손안에 잡혀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평범한 하루 속에서 이런 각성의 경험은 내 존재를 깨우고, 삶에 대한 주체적인 감각을 되찾게 해준다.


공부를 통해 얻은 이 ‘깨어있음’의 경험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정리하자면, 공부는 다음과 같은 ‘깨어있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 피로를 딛고 의식을 깨우는 힘

• 무의미한 시간을 의미로 채우는 힘

• 흐릿했던 생각을 맑게 해주는 힘


문득 창밖을 보니, 까맣던 밤 하늘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밝아오르고 있다. 나는 책을 덮고 나지막이 숨을 내쉰다. 몸은 비로소 휴식을 원하지만, 마음은 충만하다. 피곤한 눈을 감기 전, 오늘 붙잡아 두었던 시간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되새겨본다. 공부로 인해 깨어 있었던 이 밤은 내일의 나에게 작은 성장과 깊은 각성의 증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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