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판단, 그 겸손함을 위하여

- '합리적 의심없는 증명' 2편

by 이정봉 변호사

왜, 이토록 높은 기준? — 비대칭적 오류의 철학


두 종류의 오류: 무고한 자의 유죄와 유죄인 자의 무죄


형사재판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실제로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하는 것이고(이를 통계학에서는 제1종 오류라고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실제로 유죄인 사람을 무죄로 판결하는 것입니다(제2종 오류).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는 높은 기준은 제1종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이 기준 하에서는 유죄인 사람이 무죄로 풀려나는 일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이 비용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왜일까요?


영국의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열 명의 유죄인이 풀려나는 것이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는 것보다 낫다." 이 비율은 학자마다 다르게 제시되기도 합니다. 마이모니데스(유대교 학자)는 1,000:1을, 벤저민 프랭클린은 100:1을 언급했습니다. 구체적인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저에 있는 철학입니다.


두 종류의 오류는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는 생각.





왜 무고한 자의 유죄가 더 나쁜가


이 비대칭성에는 여러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 국가 권력의 압도적 불균형입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과 마주한 것은 특정 피해자 개인이 아니라 국가 전체입니다. 국가수사기관은, 법제도적 뒷받침, 과학수사 역량, 법률 전문가 등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피고인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만 대개 혼자이고, 자원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변호인의 충분한 조력에는 많은 돈이 듭니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국가가 무고한 시민을 처벌하는 것은 권력의 남용이자 사회계약의 근본적 위반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권력을 위임한 것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둘째, 회복 불가능성입니다. 유죄인 사람이 무죄로 풀려나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다시 기소할 수 있고, 다른 범죄로 처벌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지만, 피해가 명백한 범죄에서 유죄인이 무죄로 풀려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반면에, 무고한 사람이 유죄로 처벌받으면, 잃어버린 세월, 파괴된 명예, 무너진 가정 등 한 사람의 삶 자체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사형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셋째,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입니다. 무고한 사람의 유죄 판결은 사법 시스템 전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립니다. 사람들은 "나도 잘못 걸리면 저렇게 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고, 법에 대한 존중과 복종 의사가 약화됩니다.


자유주의 법철학의 관점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의 높은 기준은 자유주의 법철학의 핵심 전제를 반영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기본값(디폴트)으로 보고, 국가 권력의 행사는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예외로 봅니다. 개인은 간섭받지 않을 자유로운 상태에서 시작하며, 국가가 이 자유를 제한하려면 충분한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형사재판에서 이 원칙은 무죄추정으로 나타납니다. 피고인은 유죄가 증명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됩니다. 그리고 유죄를 증명할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수사기관)에 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이 무죄추정을 깨뜨리기 위해 국가가 넘어야 할 높은 문턱입니다.



인간 인식의 한계와 겸손


우리는 얼마나 확신할 수 있는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는 기준은 인간 인식의 근본적 한계에 대한 인정을 담고 있습니다. 녹화된 영상물 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직접 관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불완전한 증거들, 편향될 수 있는 증인들의 진술, 오류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분석뿐입니다. 이러한 제한된 재료로부터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재구성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수반합니다.


현대 인지심리학은 인간 판단의 다양한 편향과 한계를 밝혀왔습니다. 우리는 먼저 접한 정보에 과도한 가중치를 부여하고(초두 효과), 자신의 기존 믿음을 확인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며(확증 편향), 생생하고 감정적인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가용성 휴리스틱). 목격자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곡되고, 질문 방식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법정이라는 공간과 재판이라는 과정은 실제 있었던 사실을 발견하는 곳이라기 보다, 사법의 언어로 사실이 재구성되는 시, 공간이라고 봄이 상당합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이러한 인간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요구되는 신중함의 기준입니다. 바로, "우리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지만,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을 때에만 유죄라고 말하겠다"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증거는 본질적으로 직접적이지 않다.


법정에서 다루는 증거는 본질적으로 간접적입니다. 직접 증거라고 불리는 것조차도 사실은 간접적입니다. 목격자가 "피고인이 피해자를 칼로 찌르는 것을 보았다"고 증언할 때, 배심원은 사건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목격자의 지각, 기억, 표현 능력을 통해 걸러진 정보를 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부분의 범죄는 목격자 없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정황 증거들입니다. 피고인의 지문이 흉기에서 발견되었다, 피고인이 현장 근처에서 목격되었다, 피고인에게 동기가 있었다 등. 이러한 정황 증거들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형성할 때, 우리는 그 그림이 "합리적 의심 없이" 피고인의 유죄를 가리키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정황 증거에 기반한 유죄 판결의 고전적 기준은 이것입니다. 모든 증거가 피고인의 유죄라는 가설과 일관되고, 그 유죄 가설이 증거를 설명하는 유일한 합리적 가설이어야 합니다. 만약 증거가 피고인의 무죄와도 양립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 가설을 허용한다면, 합리적 의심이 남는 것입니다.



다른 증명 기준과의 비교


민사재판: 증거의 우월


형사재판의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과 대비되는 것이 민사재판의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 기준입니다. 민사재판에서 원고는 자신의 주장이 피고의 주장보다 "더 개연성이 있다"는 것만 보여주면 됩니다. 흔히 "50% + 1"의 기준이라고도 합니다. 저울이 아주 조금이라도 원고 쪽으로 기울면 원고가 승소합니다.


왜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에서 이렇게 다른 기준을 적용할까요? 그 이유는 양 유형의 재판에서 이해관계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민사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대등한 사인(私人)입니다. 양측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고 있으며, 오판의 비용은 금전적 손해로 귀결됩니다. 물론 그 손해가 클 수 있지만, 자유나 생명을 잃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따라서 양측의 오류 비용이 대체로 대칭적이라고 볼 수 있고, 더 개연성 있는 쪽이 이기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반면 형사재판에서는 국가와 개인이 비대칭적 관계에 있습니다. 국가가 패소하면(피고인 무죄)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지만, 개인이 패소하면(유죄) 그 개인의 삶이 파괴됩니다. 이 비대칭성을 반영하여 더 높은 증명 기준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 중간 기준


일부 사건에서는 "증거의 우월"보다는 높지만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보다는 낮은 중간 기준이 적용됩니다. 이를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 기준이라고 합니다.


이 기준은 주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적용됩니다. 사기 소송, 유언의 변경이나 무효 주장, 부모의 친권 박탈, 비자발적 정신병원 입원, 귀화 취소 등.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한 재산 분쟁보다는 당사자에게 더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지만, 형사처벌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습니다.


"명확하고 설득력 있는 증거" 기준은 사실인정자(판사나 배심원)가 다툼이 있는 사실의 진실성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나 확신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보다는 강하지만 "합리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보다는 약합니다.


합리적 의심과 상당한 이유: 형사절차 내에서의 구분


같은 형사절차 내에서도 단계에 따라 다른 증명 기준이 적용됩니다. 체포나 수색영장 발부에는 "상당한 이유(probable cause)"가 요구됩니다. 이것은 "범죄가 발생했고 피의자가 그것을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를 의미하며,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보다 훨씬 낮은 기준입니다.


기소 결정에도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아닌 "상당한 이유" 수준의 기준이 적용됩니다. 검찰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합리적 전망이 있으면 기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유죄를 선고하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필요합니다. 이 기준은 오직 최종 판결 단계에서만 적용되며, 그 이전 단계들은 모두 더 낮은 기준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형사절차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면서 점점 더 엄격한 심사를 거치도록 설계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원래 신의 영역이었지,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 오랜 기간 신판(神判)이 유지되어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화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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