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많이 봤죠?
'합리적 의심없는 증명'

- 1편 : 인류가 발견한 가장 정교한 진실의 척도

by 이정봉 변호사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말


법정에서 "피고인은 유죄"라는 선고가 내려지는 순간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 짧은 한마디로 한 인간의 삶은 돌이킬 수 없이 변합니다. 자유를 잃고, 명예를 잃고, 때로는 생명까지 잃습니다. 이토록 무거운 결정을 내리기 위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확신해야 할까요? 반만 넘으면 될까요? 90퍼센트? 99퍼센트? 사실 그 어떤 숫자로도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필요한 확신의 정도를 법률가들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Proof beyond reasonable doubt’입니다. 이는 단순한 법률 용어가 아닙니다.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발견하고 다듬어온, 진실과 정의 사이의 긴장을 조율하는 가장 정교한 도구입니다. 그 안에는 인간 인식의 한계에 대한 겸손,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 그리고 한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중이 담겨 있습니다.


기원을 찾아서 — 의외의 출발 : 배심원 영혼의 안전을 위한 장치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는 기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세기 후반 영국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기준은 처음부터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기준은 배심원들의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18세기 영국 배심원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들은 깊은 종교적 신념 속에서 살았습니다.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하면 자신의 영혼이 영원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 특히 "무고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는 계명은 그들에게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었습니다. 사후 심판에서 자신을 정죄할 수 있는 무서운 경고였습니다.

이런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배심원들은 명백한 범죄자에 대해서도 유죄 평결을 내리기를 주저했습니다. "만에 하나 내가 틀렸다면 어떻게 하지?" "이 사람이 정말 무고한데 내가 그를 교수대로 보낸다면?" 이런 불안이 형사사법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위험이 있었습니다. 증거가 충분해 보여도 배심원들은 확신을 갖지 못했고, 범죄자들이 풀려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는 기준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습니다. 법원은 배심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적 확실성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의심이 남지 않을 정도로 확신하면 됩니다. 그 정도의 확신을 갖고 유죄 평결을 내린다면, 설령 결과적으로 오판이었더라도 여러분의 영혼은 안전합니다. 여러분은 도덕적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배심원들에게 유죄 평결을 내려도 된다는 일종의 허가증이었습니다. 배심원의 양심에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주면서, 동시에 형사사법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실용적 해법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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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에서 법학으로: 도덕적 확실성의 개념


이 기준의 지적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들면, 중세 가톨릭 신학의 "도덕적 확실성"이라는 개념과 만나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스콜라 철학자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확실성의 종류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형이상학적 또는 절대적 확실성입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부정이 불가능한 진리에 대한 확실성입니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이다"와 같은 수학적 진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둘째는 물리적 확실성으로, 자연법칙에 기반한 확실성입니다. "태양은 내일 동쪽에서 뜬다"가 이 범주에 들어갑니다. 셋째는 도덕적 확실성으로, 일상적 삶의 중요한 결정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확실성입니다. 현명한 사람이 행동의 기초로 삼을 수 있을 정도의 확신을 말합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이 세속적 문제에서 절대적 확실성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오직 신만이 진실을 완전히 알 수 있으며, 인간은 "거울에 비친 것처럼 희미하게" 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판단을 유보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지식을 가지고도 결정을 내려야 하며, 그때 요구되는 것이 바로 "도덕적 확실성"입니다.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은 바로 이 "도덕적 확실성"을 법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수학적 증명처럼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명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가지는 확신의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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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통법에서의 발전


문헌상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한 것은 1770년대 아일랜드 더블린의 재판 기록입니다. 그러나 이 개념이 영국 법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입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1935년 Woolmington v. DPP 사건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사건에서 영국 귀족원(House of Lords, 지금의 대법원에 해당)은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할 책임이 검찰에 있으며, 그 증명의 정도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고 명확히 선언했습니다. 당시 샌키(Sankey)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국 형법의 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황금실은 피고인의 유죄를 증명할 의무가 검찰에 있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단순한 증거법 원칙에서 헌법적 원리의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이후 이 기준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미법계 국가들로 퍼져나갔고, 대륙법계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개념이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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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어려움: 말로 포착할 수 없는 것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의 가장 큰 역설이 있습니다. 이 기준이 형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면서 동시에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수백 년간 법률가들은 이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려고 시도해 왔지만, 아직까지 모두가 만족하는 정의에 도달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0년 In re Winship 사건에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적법절차의 헌법적 요구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법원은 배심원에게 이 개념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상세한 정의를 시도하면 오히려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중요한 개념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합리적 의심"이 본질적으로 수량화할 수 없는 질적 판단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름다움"이나 "사랑"을 정의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경험하면 알아볼 수 있지만, 말로 완벽하게 포착하기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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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합리적 인가 : 이성과 상식의 기준


"합리적 의심"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합리적"입니다. 모든 종류의 의심이 유죄 평결을 막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합리적인 의심만이 그런 효력을 가집니다.

합리적인 의심이란 이성과 상식에 기초한 의심입니다. 단순한 가능성이나 상상에 근거한 의심이 아니라, 증거에 대한 냉정하고 신중한 검토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의심입니다. 미국의 여러 법원은 이를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이 일상생활의 중요한 문제에서 주저하거나 망설이게 만들 정도의 의심"이라고 설명합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의 예를 들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외계인이 와서 증거를 조작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증인이 쌍둥이 형제를 피고인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은, 피고인에게 쌍둥이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단순히 "무언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합리적 의심이 아닙니다.

합리적 의심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배심원은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의심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증거에 기반하고, 논리적으로 일관되며, 상식에 부합할 때 비로소 그 의심은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됩니다.


확률로 환산할 수 있는가: 수량화의 유혹과 한계


일부 학자들과 법률가들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확률로 환산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90퍼센트? 95퍼센트? 99퍼센트? 이런 수량화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명확한 숫자가 있다면 판단이 훨씬 쉬워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원과 학자들은 이런 수량화에 반대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법적 증명은 통계적 확률과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통계적 확률은 반복 가능한 사건에 적용됩니다. 주사위를 던지면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입니다. 이건 계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문제되는 것은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서 특정 사람이 특정 행위를 했는가 하는 유일무이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김철수가 2023년 5월 15일 밤 11시에 이 칼로 피해자를 찔렀을 확률"은 의미 있게 계산될 수 없습니다.

둘째, 수량화는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만약 법원이 "95퍼센트의 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배심원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95퍼센트라면 20번 중 1번은 무고한 사람을 유죄로 판결해도 된다는 뜻인가?" 그러나 이것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의도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 기준은 각각의 개별 사건에서 합리적 의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 전체적으로 5퍼센트의 오류율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셋째, 확률적 사고는 배심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증거에 기반해 합리적 의심이 있는가?"라는 질문은 배심원에게 적극적인 판단을 요구합니다. 반면 "유죄일 확률이 95퍼센트를 넘는가?"라는 질문은 배심원을 수동적인 계산기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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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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