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뱃속에 갇힌 노래들

- 2025. 11. 11. 선고, 독일 뮌헨 지방법원 판결에 부쳐

by 이정봉 변호사

1. 벡터가 된 노래


여기 아홉 개의 노래가 있다. '숨이 차오르는(Atemlos)', '남자들이란(Männer)', '구름 위에서(Über den Wolken)'... 독일인들의 영혼을 적셨던 대중가요의 가사들이다. 이 노래들은 이제 무대 위에 있지 않다. 그것들은 거대언어모델(LLM)이라는 기계의 뱃속, 그 깊고 어두운 파라미터의 바다에 잠겨 있다.


원고는 저작권 관리 단체다. 그들은 기계가 허락도 없이 이 가사들을 삼켰다고 주장했다. 피고는 미국의 오픈AI. 그들은 자신들의 기계가 노래를 '베낀' 것이 아니라, 수천억 개의 텍스트 속에서 언어의 확률과 패턴을 '학습'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2025년 11월 11일, 뮌헨의 법정은 이 차가운 논쟁에 판결을 내렸다.


2. 기억(Memorization)이라는 이름의 복제


피고 측 변호인단은 화려한 기술 용어를 쏟아냈다. "모델은 데이터베이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통계적 확률에 따라 다음에 올 단어(토큰)를 예측할 뿐입니다. 가사는 그 안에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재판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법관들의 눈에 비친 진실은 단순했다.


사용자가 챗봇에게 물었다. "‘남자들이란’의 가사가 뭐야?"


기계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남자는 팔로 감싸주고, 남자는 보호해 주고..." 토시 하나 틀리지 않았다.


법원은 선언했다. 기계가 학습 데이터의 내용을 완벽하게 암기(Memorization)하여 뱉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비록 수학적 벡터로 분해되어 있다 해도 '물리적 고정'이자 '복제(Vervielfältigung)'다. 기계의 파라미터 속에 노래가 유령처럼, 그러나 명확하게 실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채굴(Mining)'로 볼 수 없어!


피고는 '텍스트 및 데이터 마이닝(TDM)'이라는 방패를 꺼내 들었다. 유럽 저작권법은 연구나 분석을 위해 대량의 데이터를 읽어들이는 것을 허용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학습 행위가 이 '마이닝'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 방패를 뚫는 논리를 제시했다.


데이터 마이닝은 정보 속에서 '패턴'과 '경향'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피고의 모델은 패턴을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저작물 자체를 뱃속에 저장해 두었다가 그대로 토해냈다. 분석이 아니라 그대로 베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법원은 모델 내부에서의 복제는 TDM 면책 조항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피고는 이 '암기 현상'이 "드문 버그(rare bug)"라고도 변명했다.

법원은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는 이미 2021년부터 자신들의 모델이 학습 데이터를 통째로 외워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멈추지 않은 것은 과실이다.


4. 누가 책임져야 하나?


피고는 마지막으로 사용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했기에 결과물이 나온 것입니다. 복제의 주체는 사용자입니다."


법원은 고개를 저었다. 사용자는 그저 "가사를 알려줘"라고 물었을 뿐이다. 그 단순한 질문에 수십 줄의 저작물을 쏟아낸 것은 기계의 설계자, 바로 피고였다. 기계의 뱃속을 채운 것도, 그 뱃속의 것을 꺼내 보이게 만든 것도 피고의 의지였다.


5. 멈춤의 명령


판결은 단호했다. 피고는 즉시 해당 가사들을 모델에서 복제하거나 챗봇을 통해 대중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피고는 2022년 11월 30일부터 발생한 모든 수익과 침해 규모를 원고에게 보고하고,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피고는 "독일에서 사업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읍소했지만, 법원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권리를 짓밟을 수는 없다"며 일축했다.


알고리즘의 뱃속에 갇혀 있던 시인들의 언어는, 비로소 법의 이름으로 해방되었다. 기계는 말을 배웠으나, 그 말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배우지 못했다. 뮌헨지방법원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바로 그 '주인'의 존재였다.


오픈AI가 항소했으니 판결의 행방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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