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022. 5. 31. 2016모587결정
2014년 5월 26일 정오 무렵이었다. 수사기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경기도 성남에 있는 카카오 본사로 쳐들어가는 대신, 사무실에 앉아 종이 한 장을 팩스로 밀어 넣었다. ‘압수수색 영장’이었다.
영장의 표적은 피의자 A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었다. 혐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카카오의 서버실은 침묵 속에 가동되었다. 영장을 수신한 카카오 담당자는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서버에서 2014년 5월 20일 00시 00분부터 21일 23시 59분까지, 꼬박 이틀치 시간을 통째로 도려냈다.
그 이틀의 시간 속에는 피의자 A가 집회와 관련해 나눈 말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혐의와 무관한 A의 사생활이 날것 그대로 섞여 있었다.
기계는 선별하지 않는다. 카카오 담당자도 선별하지 않았다. 혐의 사실과 관련된 것만 발라낼 기술이 없다는 이유였다. 뭉텅이로 추출된 그 '디지털 덩어리'는 이메일을 타고 수사기관의 컴퓨터로 전송되었다.
그 시각, 피의자 A는 아무것도 몰랐다. 자신의 이틀치 삶이 송두리째 복제되어 검찰청 서버로 넘어가는 동안, 수사기관은 그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뒤늦게 사실을 안 A는 법원에 준항고를 제기했다. "이것은 도둑질과 다름없다"는 항변이었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는 원칙이 있다. 영장은 원본을 제시해야 하고, 피의자에게는 "지금 당신 물건을 가져간다"고 알리고 그 현장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수사관이 엉뚱한 물건을 슬쩍 주머니에 넣는지, 증거를 조작하는지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압수수색은 ‘유령’처럼 진행되었다.
영장 원본은 제시되지 않았다. 팩스 사본이 날아갔을 뿐이다.
피의자에게는 일시와 장소를 알리지 않았다.
압수된 물건의 목록조차 주지 않았다.
검사는 법정에서 "급속을 요하는 때(형사소송법 제122조 단서)"였다고 강변했다. 카카오톡 대화 내용은 서버에 5~7일 정도만 보관되니, 피의자에게 연락하고 기다리다가는 데이터가 삭제될 위험이 있었다는 논리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기록을 넘겼다. 검사의 '급박함' 주장은 사실의 벽에 부딪혀 깨졌다.
영장이 발부된 것은 5월 24일이었다. 수사기관이 팩스를 보낸 것은 5월 26일이었다. 정말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면 영장을 손에 쥐자마자 달려갔어야 했다. 이틀이나 묵혀두고 나서 '급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더욱이 압수 대상은 서버에 저장된 데이터였다. 피의자 A가 카카오 본사 서버실에 침투해 데이터를 지울 능력은 없었다. 그에게 통지한다고 해서 증거가 인멸될 우려는 없었다는 뜻이다.
법원은 수사기관의 행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영장 원본을 보여주지 않은 것, 피의자를 따돌린 것, 혐의와 무관한 사생활까지 통째로 긁어간 것, 압수 목록을 주지 않은 것. 이 모든 것이 위법했다.
검사는 불복하여 재항고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202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급속을 요하는 때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잘못은 있지만, 원심의 판단이 옳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단호했다. 수사기관이 편의주의에 빠져 절차를 무시한 채 획득한 증거는, 설령 그 속에 범죄의 증거가 들어있다 한들 '독이 든 나무의 열매(위법수집증거)'일 뿐이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피의자의 참여권이 배제된 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영장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위법이었다.
이 판결 이후, 수사기관의 '팩스 압수수색' 관행에는 제동이 걸렸다. 이제 수사관들은 디지털 증거를 압수할 때 피의자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서버 압수수색하러 갑니다. 오셔서 참관하시겠습니까?"
피의자 A의 이틀 치 카카오톡 대화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쥔 그 데이터를 모두 취소(삭제)하라고 명했다.
절차는 번거롭고, 정의는 느리다. 그러나 그 번거로움과 느림 속에 개인의 자유가 숨 쉴 공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