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술이 세상을 뒤흔들 때마다, 인간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현란함에 쉽게 매료되곤 하였다.
오늘날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것이 빚어내는 갖가지 현상들, 특히 명망 높은 예술가의 화풍(畫風)마저 능숙히 모방해내는 재주 앞에 속절없이 감탄사를 연발하는 세태를 보며, 나는 깊은 우려와 함께 서글픔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보라, 저 '지브리풍'이라는 이름 아래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이미지들을. 한때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장(巨匠)과 그의 동료들이 수십 년의 각고(刻苦) 끝에 빚어낸, 인간의 동심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녹아든 그 독특한 미감(美感)을, 이제는 차가운 기계가 한낱 데이터로 학습하여 순식간에 복제해내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기술의 개가(凱歌)라 칭송하지만, 내 눈에는 인간 정신의 고유한 성취가 속절없이 침해당하는 모습으로 비칠 따름이다.
과연 이것을 진정한 의미의 창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예술이란 본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린 사유와 감정, 고뇌와 환희가 손끝의 기예(技藝)를 통해 물질화되는 지난(至難)한 과정이 아니었던가. 한 명의 작가가 자신만의 화풍을 세우기까지는, 단순히 기술의 연마를 넘어, 세상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선과 철학을 투영하는 영혼의 분투(奮鬪)가 전제되어야 마땅하다. 그 길은 모방과 학습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오직 한 인간의 실존적 체험과 사색만이 닿을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그 모든 지난한 과정을 생략한 채, 오로지 결과물의 외양만을 본떠 허깨비 같은 이미지들을 무한히 생산해낸다. 이는 마치 연금술사가 황금을 만들려 했으나 결국 값싼 모조품만을 양산해낸 격이며, 플라톤이 경계했던 동굴 속 그림자 놀음과 다를 바 없다. 더욱 통탄할 것은, 이러한 가짜 신기루에 대중이 열광하는 사이, 화폭 앞에서 고독하게 자신의 세계와 씨름하던 진정한 예술가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효율과 속도라는 미명 아래, 인간의 손길이 담긴 더디고 값비싼 작업은 외면당하고, 그들의 생계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는 단순히 몇몇 화가의 경제적 곤란을 넘어, 우리 시대의 문화와 정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창조적 역량이란 무엇이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쌓아 올린 예술적 성취의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가? 기술의 편리함에 취해 진정한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든 인간 정신의 고귀함을 망각하게 될 때,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 것인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는 온전히 인간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다. 눈앞의 현란한 결과물에 박수를 보내기 전에, 그 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응시하며 우리 시대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이다. 자칫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기계의 노예가 되어, 정신의 황폐화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 논객, 슬기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