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의 말들이 밀려온다. 소음이다. 귀를 막아도 살갗을 뚫고 들어와 몸 안에 쌓인다. 흘러간 일, 닥쳐올 일, 남의 집 담장 너머의 일까지. 그것들은 무게를 가누지 못하는 짐짝처럼 나를 누른다. 힘을 주어 밀어내려 해도 그것들은 꿈쩍 않는다. 발 디딜 곳이 문득 허공으로 변한다. 몸이 기우뚱거린다.
본래 세상은 그러하다. 내 손아귀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영역과, 손을 뻗어도 결코 닿지 않는 영역으로 나뉘어 있을 뿐이다. 그 경계는 명백하다. 내 몸뚱어리 하나를 움직이는 일, 밥을 씹어 삼키는 일, 연장을 쥐고 땀 흘리는 일은 나의 영역이다. 펜을 쥐고 글자를 새기는 일도 그러하다. 나의 의지가 근육과 신경을 통해 구현되는 자리다.
그러나 해가 뜨고 지는 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를 흔드는 일, 타인의 마음속 풍경은 나의 바깥이다. 강물이 넘쳐 제방을 무너뜨리는 것을 사람이 어찌 막을 것인가. 세월이 흘러 살과 뼈를 스러지게 하는 것을 어찌 거역할 것인가. 그것은 자연의 일이거나 운명의 일이니, 나의 일이 아니다. 그 앞에서 인간은 다만 무력하다.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저 광대한 바깥일에 마음을 쏟는 것은 부질없다. 에너지는 소진되고 정신은 황폐해진다. 그러니 몸을 돌려야 한다. 나의 영역, 내 힘이 미치는 이 작은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여기가 나의 자리다. 나는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땅을 파고, 나무를 깎고, 글을 쓴다. 무뎌진 연장을 갈고 닦는다. 손끝의 감각과 근육의 수축에 정신을 모은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을 고른다. 발바닥으로 땅의 단단함을 확인한다. 그러면 바깥의 소란은 차츰 멀어진다. 허공에 떴던 몸이 제 무게를 찾고 땅에 뿌리내린다.
이것이 인간이 스스로 세울 수 있는 질서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는 추(錘)다. 세상은 여전히 제멋대로 흘러갈 것이다. 비바람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몫의 일을 감당하며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뿐이다. 내딛는 한 걸음, 손으로 일구는 작은 결과들. 그리하여 다만 오늘 하루를 건너갈 뿐이다.
2.
실로 어지럽고 소란한 시대다. 천지사방에서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는 개인의 사유(思惟)마저 익사시킬 듯 넘실대고, 덧없는 유행과 군중의 아우성은 내면의 고요한 소리를 좀먹는다. 가히 정신의 반석(磐石)을 굳건히 지키기 어려운 시절이다.
문명의 이기(利器)는 날로 번성하여 세상을 손바닥 안에 넣은 듯 호언하나, 정작 인간의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 그지없으니, 이 무슨 역설인가.
예로부터 동서양의 현철(賢哲)들은 한결같이 외물(外物)의 교란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정(平靜)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상의 덕목이라 가르쳤다. 저 옛 로마의 궁정에서도 누더기를 걸치고 혹독한 추방의 삶 속에서도 인간 정신의 위엄을 잃지 않았던 스토아 철인(哲人) 에픽테토스의 통찰은, 시대를 넘어 오늘 우리에게도 깊은 성찰(省察)을 제시한다.
그 가르침의 정수(精髓)는 명료하다. 천하만사(天下萬事)에는 인간의 의지와 역량으로 마땅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과, 아무리 애쓴다 한들 결코 손댈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준엄한 구분이다.
전자를 일러 ‘우리의 영역(our sphere)’이라 한다면, 후자는 ‘우리의 영역 바깥(beyond our sphere)’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나의 의지, 나의 판단, 나의 가치관, 나의 행위는 나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것들이다. 나의 신념에 따라 삶의 태도를 결정하고, 역경 앞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부단한 수양(修養)으로 인격을 도야(陶冶)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고유한 권능이자 책임인 것이다.
허나, 나의 통제 밖에 있는 것들은 얼마나 광대한가. 저 하늘의 운행과 계절의 순환, 역사의 도도한 흐름, 타인의 마음속 은밀한 생각과 감정의 파고(波高)까지. 나의 출생과 죽음, 피할 수 없는 질병과 노쇠,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이나 사회의 격변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필멸(必滅)의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운명(運命) 혹은 필연(必然)의 영역이다. 이것들을 내 마음대로 바꾸려 하거나 그것들에 얽매여 번뇌(煩惱)하는 것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어리석음과 같이 부질없고 소모적안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는 자신의 분수(分數)를 아는 자다. 그는 헛되이 자신의 영역 바깥의 일에 마음을 두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고요히 자신의 내면으로 눈을 돌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토, 즉 자신의 정신과 의지를 가꾸는 데 전념한다. 외부 세계의 소란과 혼돈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질서의 성채(城砦)를 쌓아 올리는 것이다. 이는 결코 세상을 등지는 소극적 도피가 아니라, 오히려 혼돈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주체성을 지키려는 가장 능동적이고 치열한 정신의 투쟁이다.
세파(世波)는 여전히 거칠 것이고 문명의 소음은 더욱 극성을 부릴지 모른다. 허나 외물(外物)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정신의 주인이 되고자 결단하는 자에게는, 이 낡고도 새로운 지혜가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 비록 천하를 얻지는 못할지라도, 스스로의 내면을 다스리는 법을 깨친 자는 세상의 그 어떤 권세나 부귀와도 바꿀 수 없는 정신의 자유와 평화를 얻을 것이니, 이야말로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길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경계를 알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그 안에 인간의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