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로네시스를 생각하다.
'지혜롭다'는 말.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많은 책을 읽어 박식한 사람? 아니면 인생 경험이 풍부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
둘 다 일리가 있지.
사전적으로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라고 해.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것과는 조금 달라. 아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옳고 가치 있는 것인지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에 가깝지.
그런데 오늘 우리가 좀 더 주목하고 싶은 건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야.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프로네시스(Phronesis)'라고 불렀는데, 쉽게 말하면 삶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무엇이 최선인지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야. 이론적인 지식만으로는 부족해. 실제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와 갈등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감각 같은 거지.
예를 들어 볼까?
상황판단에 대한 것이야, 친구가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 무조건 "힘내!"라고 말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그 친구의 성향, 처한 상황, 감정 상태를 헤아려서 때로는 조용히 곁을 지켜주고, 때로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네거나, 함께 맛있는 것을 먹으며 기분 전환을 돕는 등, 그 순간 가장 적절한 위로와 도움의 방식을 아는 것. 이게 실천적 지혜야.
다음은 균형 감각,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 인간관계에서 솔직함과 배려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 나의 욕구와 타인의 필요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 이런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실천적 지혜를 발휘하는 모습이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 앞에서 최적의 해답을 찾아가려는 노력이니까.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 성공 경험뿐 아니라 실패 경험에서도 배우는 게 중요해. '왜 그때 그런 선택을 했을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다음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에서 실천적 지혜는 더욱 깊어져.
실천적 지혜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야. 오히려 일상 속에서 꾸준히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 같아. 경험하고 성찰하기, 다양한 경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경험이 어떤 의미였는지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는 거야. 일기를 쓰거나,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경청하고 공감하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해.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을 이해할수록 판단의 폭도 넓어지거든.
유연하게 생각하기,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해.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걸 아는 거지.
꾸준히 실천하기, 작은 결정이라도 신중하게 내리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려는 태도를 갖는 거야. 실천 없는 지혜는 공허하니까.
결국 실천적 지혜는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야.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고민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지혜를 닮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지혜. 그것은 앎과 다르다.
앎은 머리에 쌓이지만, 지혜는 삶의 마디에 새겨진다. 문자와 이론 속에 정돈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갈피 속에서 길을 찾아내는 힘이다. 오늘 우리는 그 힘, 실천적 지혜에 대해 말하려 한다.
실천적 지혜는 현장에서 작동한다. 삶은 이론처럼 명쾌하지 않다. 뒤엉키고 모순된 상황 앞에서 인간은 판단해야 한다. 무엇이 더 나은가. 무엇이 덜 해로운가. 정답 없는 물음 앞에서 최선을 찾아내려는 노력, 그것이 실천적 지혜의 본질일 것이다.
예컨대,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닐 수 있다. 상황의 결을 읽고, 침묵해야 할 때와 손 내밀어야 할 때를 분별하는 것. 섣부른 위로나 단정적인 충고 대신, 그 순간 존재해야 할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 그 자리에 바로 지혜는 깃든다.
삶은 끊임없는 저울질이다. 일과 휴식, 나아감과 멈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무게를 잰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힘, 그 균형점을 찾아내려는 의지가 실천적 지혜를 단련시킨다. 완벽한 균형은 환상일지라도, 그를 향한 노력 속에 인간의 길이 있다.
경험은 지혜의 바탕이다. 성공뿐 아니라 실패 역시 지혜의 자양분이다. 지나온 길을 되짚어보고, 쓰러진 자리의 의미를 되새길 때, 지혜는 비로소 깊어진다. 실수는 부끄러움이지만, 그것을 직면하고 통과할 때 인간은 단단해진다.
이러한 지혜는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타고나는 기질 위에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고, 성찰의 시간이 쌓여야 한다. 삶의 소란 속에서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선, 타인의 삶을 통해 나의 좌표를 가늠하는 태도, 현실의 단단함 앞에서 좌절하면서도 다시 길을 묻는 의지가 필요하다.
실천적 지혜는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매 순간 마주하는 선택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의지이며 태도다. 삶이라는 거친 바다 위에서 끊임없이 노를 저어가는 행위, 그 자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