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길을 밝혀줄 '실천적 지혜'라는 등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환한 등불보다, 어둠 속에서 길을 더듬어 찾아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삶이란, 지혜의 논리만으로는 모두 품을 수 없는 깊고 아득한 심연 속에 있습니다.
저 멀리 센 강변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속삭였습니다.
우리의 삶은 B(Birth)라는 불가해한 시작과 D(Death)라는 필연적인 끝 사이에 놓인, C(Choice)라는 찬란하고도 위태로운 찰나라고.
알파벳 세 글자에 담긴 인생의 비밀은, 안개 낀 강물처럼
아련하면서도 존재의 무게만큼이나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B (Birth)는 새벽안개 속의 출발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마치 누군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어느 날 문득 이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첫 숨을 터뜨리던 순간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풍경 속에, 어떤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던져질지 알지 못한 채, 그저 생명의 강물에 휩쓸려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B는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신비롭고도 막막한 새벽안개 같았습니다.
D (Death)는 노을 지는 지평선입니다. 시간의 강물은 쉼 없이 흘러, 모든 생명은 저물어가는 노을을 향해 나아갑니다.
아무리 화려했던 날들도, 치열했던 순간들도 결국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갈 운명임을 압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역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D는 우리 모두가 맞이할 숙명이자, 조용히 모든 것을 품어 안는 광활한 침묵의 바다입니다.
그 사이에 놓인 C (Choice)는 별빛을 따라 걷는 길입니다.
B라는 새벽과 D라는 황혼 사이, 우리는 걷습니다.
'선택'이라는 이름의 별을 따라 우리만의 길을 내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이 선택의 순간들이야말로 우리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불꽃이라 말했습니다. 아침 식탁의 메뉴를 고르는 작은 망설임부터, 영혼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결단까지.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수한 갈림길 앞에서 방향을 정하는 걸음들의 연속입니다.
이 선택의 조각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모자이크를 완성합니다.
어떤 조각은 눈부신 햇살처럼 빛나고, 어떤 조각은 시린 달빛처럼 아픔을 새깁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빛과 그림자는 오롯이 '나'의 선택이 새긴 무늬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누구도 대신 그려주거나 지워줄 수 없는, 고독하지만 신성하기까지한 삶의 예술. 그래서 때로 선택의 무게는 어깨를 짓누르고, 광활한 사막 앞에 홀로 선 것처럼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 때문에, 우리는 밤하늘의 별처럼 빛날 수 있습니다. 정해진 궤도를 도는 행성이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며 홀로 존재하는 '항성'일 수 있습니다.
'실천적 지혜'는 어쩌면 이 어두운 밤길을 밝혀주는 희미한 별빛일지도 모릅니다. 그 빛에 의지하되, 결국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알 수 없는 시작과 정해진 끝 사이에서, 매 순간 마음의 별빛을 따라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순례와도 같습니다. 때로는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넘어져 상처 입더라도, 다시 일어나 별을 향해 손을 뻗는 용기. 그 반짝이는 선택들이 모여, 당신의 삶이라는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을 것입니다.
당신이 묵묵히 걸어가는 그 'C' 앞에, '폭삭 속았수다' 한 마디를 건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