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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작. 썰

- 판결문의 작화 썰풀이 1

by 이정봉 변호사
경찰의 사건 수사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그는 경찰서의 높은 벽 앞에서 한동안 서성였다.

무언가를 얻으러 간 것은 아니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러 갔을 뿐이다.


지난봄, 그는 몇몇 사람과 함께 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다른 이들이 공동으로 배임을 저질렀으니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으나,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불송치, 즉 무혐의로 종결되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경찰서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찰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해 12월, 그는 수사자료의 공개를 요구했다.

경찰은 자료를 내줄 수 없다고 했다. 비공개였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사생활 침해와 수사 업무의 장애를 이유로 들었다.




그의 이의제기도 심의회에서 묵살됐다.

그는 다시 요구했다.

경찰이 심의회를 열어 자료를 비공개로 결정할 때 나눈 말들을 공개해 줄 것을 요구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 또한, 법이 공개를 막고 있다고 했다.







결국 그는 법정에 섰다.

피고는 경찰서장이었다. 원고는 그 자신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물었다.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진실은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


재판에서는 정보의 성질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경찰은 그 정보들이 수사기록이므로 공개되면 수사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크게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내밀한 생활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맞섰다.


그는 그것이 아니라 말했다.

이미 끝난 수사이고,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정보이며, 사생활을 드러낼 부분만 빼고 공개하면 된다고 말했다.


법정의 공기는 무거웠다.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삼키며 자신이 이곳에 서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이 싸움은 어떤 추상적인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그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구체적 삶과 권리를 위한 것이었다.


법정은 숙고 끝에 결론을 내렸다. 판사의 목소리는 낮고 명료했다.


“원고가 요구한 열두 개의 정보 중 하나는 경찰이 보관하고 있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소송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를 각하한다.”


“나머지 열한 개 정보 중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은 공개하라. 수사가 이미 종료되었고, 해당 정보가 공개된다 하여 경찰의 수사 업무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된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이 정보들에서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을 삭제하면, 개인의 내밀한 생활을 보호하면서도 원고의 권리를 구제하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심의회 회의록 역시 일부 정보를 제외하고 공개하라. 발언자 개인의 이름과 직위는 지우되, 회의에서 오간 논의와 판단의 이유는 공개해야 한다. 이미 끝난 결정의 과정은 국민에게 알 권리를 보장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지키기 위해 드러날 필요가 있다.”





법정은 그의 편을 완전히 들어주지 않았으나, 최소한의 진실을 향해 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판사의 말을 듣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어제보다는 나았다.

그는 이겼고, 동시에 졌다.

완승도, 완패도 없었다. 법정의 서사는 늘 그런 식에 가까웠다.


그가 법정의 계단을 내려올 때 바깥은 이미 어둑했다.

봄밤의 바람은 아직 차가웠고, 길은 여전히 고단했다.

그는 한참을 걸으며 생각했다.

정보와 진실, 법과 정의는 모두 조금씩 어긋난 채 살아가는 것이었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사람들은 삶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발걸음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걸을 수 있으면,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었다.

그에게는 그것이면 족했다.







수원지방법원24구합62876호(정보공개청구거부처분취소등청구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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