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작.썰 4화 : 대법원 2022도1452호 사건
사건의 시작은 평범한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서에 불려 온 피고인. 잠시 조사가 뜸한 틈을 타 스마트폰 메신저를 광클하며 대화 내용을 지우기 시작합니다.
"아, 저 사람 뭔가 구린 게 있구나!" 경찰의 촉이 발동하는 순간이죠. 결국 경찰은 "폰 좀 봅시다"를 시전합니다.
피고인은 순순히 "네..." 하며 폰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임의제출'입니다. 말 그대로 자유의사에 따라 핸드폰을 제출했으니 강제로 제출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사실 진정한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수사당사자로 조사받는 상황에서 대부분은 그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법이지요.
그런데 이게 웬걸? 사기 증거 찾으려고 열어본 폰에서, 사기와는 1도 관련 없는 '불법 촬영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겁니다. 경찰은 "유레카!"를 외쳤겠지만, 사실 이건 첫 번째 삽질이었습니다. 사기 증거 확보를 위해 건네받은 건데, 허락도 없이 갤러리를 터는 건 명백한 '수사 범위 이탈'이었거든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깨달은 경찰, 이번엔 정공법으로 갑니다. 법원으로 달려가 '압수·수색영장'이라는 아이템을 획득하죠. 영장에는 이런 미션이 적혀 있었습니다.
미션 장소: 피고인의 집
미션 목표: 집 안에 있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외부 저장매체'를 찾아 불법 촬영물을 확보하라!
자, 이제 이 영장만 있으면 모든 게 합법이 되는 '프리패스'가 생긴 걸까요? 경찰은 의기양양하게 피고인의 집으로 쳐들어갑니다.
경찰은 피고인의 집에서 새로운 스마트폰 한 대를 발견해 압수합니다. 여기까지는 영장에 따른 완벽한 플레이였죠.
그런데 바로 여기서, 경찰은 선을 넘어 버립니다.
압수한 폰이 마침 '구글 계정'에 로그인되어 있는 걸 본 순간, 경찰의 머릿속에 '빅 픽처'가 스쳐 지나간 겁니다. "이 폰에만 자료가 있을까? 진짜는 하늘에 있겠지!" 그들은 스마트폰을 열쇠 삼아,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구글의 거대한 데이터 창고, 즉 '구글 클라우드'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빙고! 클라우드 안에는 피고인이 꽁꽁 숨겨둔 불법 촬영 영상과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경찰은 신나게 증거들을 다운로드했고, 2심 법원까지는 이 '클라우드발 증거'들을 인정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했죠. 게임 끝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대법원에서 장르가 바뀝니다. 냉정한 법정 드라마로 말이죠. 대법관들은 차갑게 지적했습니다.
"경찰 양반, 영장에 뭐라고 쓰여 있소? '피고인의 집'에 있는 '하드디스크'를 뒤지라고 했지, 누가 인터넷 타고 미국 구글 서버까지 여행 다녀오라고 허락했소?"
대법원의 논리는 심플했습니다.
영장은 지도다 : 영장에 '수색 장소'가 '서울시 강남구 OO 아파트'라고 적혀 있으면, 그 아파트만 뒤져야 합니다. 거기서 발견한 열쇠로 '부산시 해운대구 XX 오피스텔'을 따고 들어가면 그건 도둑질이죠. 피고인의 집과 구글 클라우드는 전혀 다른 장소입니다.
'원격지 서버'는 별도 아이템 : 클라우드 같은 '원격 서버'를 털고 싶으면, 영장을 받을 때부터 "클라우드 서버도 포함해서 압수하게 해주세요!"라고 판사에게 따로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이번 영장엔 그런 말이 한마디도 없었죠.
독이 든 나무의 열매는 먹을 수 없다 : 결국 경찰이 클라우드에서 다운받은 증거들은? 영장 범위를 벗어난 '불법 증거'입니다. 그리고 불법으로 얻은 증거(독이 든 나무)를 가지고 피해자 진술을 받아내는 등 추가로 확보한 증거(독이 든 열매) 역시 싹 다 버려야 합니다. 이름하여 '독수독과'이론입니다.
피고인이 죄가 없다는 게 아닙니다.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죠. 하지만 경찰이 범인을 잡는 과정에서 '법'이 정한 룰, '적법절차 준수'라는 헌법적 가치를 어겼기에 가장 결정적인 증거들이 법정에서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겁니다.
결국 이 사건은 "증거 불충분" 상태가 되어 다시 재판하라고 인천지방법원으로 리턴매치! 수사기관의 의욕 과잉이 부른, 어쩌면 조금은 '웃픈 대참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법원 2022도1452 판결 해설
이 판결은 디지털 시대의 압수수색에서 '영장에 기재된 압수수색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사례입니다. 특히, 피의자의 집에서 압수한 스마트폰을 이용해 그곳에 저장되지 않은 '클라우드(원격 서버)'에 접속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것이 허용되는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을 사기 혐의로 조사하던 중, 피고인으로부터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았습니다.
경찰은 이 휴대전화에서 사기 혐의와 무관한 '불법 촬영물'을 발견했습니다. (이 최초의 발견 과정은 현재 문제되느 사기 혐의와 무관한 별건 증거이므로 위법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법원에서 '불법 촬영물'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정식으로 발부받았습니다. 영장에는 수색할 장소: 피고인의 주거지, 압수할 물건: 사진, 동영상 파일이 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외부 저장매체라고만 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다른 휴대전화(이 사건의 핵심)를 압수했고, 그 전화가 구글 계정에 로그인된 상태인 것을 이용해 '구글 클라우드'에 접속하여 불법 촬영물을 다운로드했습니다.
1심과 2심(원심)은 이 클라우드 증거를 유죄의 근거로 인정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가. 영장주의와 엄격 해석의 원칙
대법원은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영장주의의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영장에 적힌 문구는 함부로 확대하거나 유추해서 해석해서는 안 되며, 엄격하게 그 문언대로 해석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피의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영장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의 명백한 구분
대법원은 '수색할 장소'에 있는 컴퓨터나 휴대전화와, 정보통신망으로 연결된 '원격지 서버(클라우드)'는 명백히 다른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저장매체(휴대전화, 하드디스크): 영장에 기재된 '장소'에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입니다.
원격지 서버(클라우드): 물리적 장소와 분리된 가상의 저장 공간입니다.
따라서, 경찰이 원격지 서버의 정보를 압수·수색하려면, 영장의 '압수할 물건' 목록에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가 별도로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이 사건 영장에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외부 저장매체"라고만 되어 있었을 뿐, 원격 서버에 대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다. 위법수집증거배제 법칙 (독수독과 이론)의 엄격한 적용
결론적으로 경찰의 클라우드 접속 및 파일 다운로드 행위는 영장이 허가한 범위를 넘어선 위법한 압수·수색입니다.
이렇게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불법 촬영물)는 그 자체로 증거능력이 없습니다. 즉,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됩니다.
더 나아가, 이 위법한 증거를 바탕으로 얻어낸 2차 증거(예: 피해자에게 불법 촬영물을 보여주고 받은 진술 등) 역시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과일(毒樹毒果)'과 같아서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는 점까지 명확히 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무죄라고 단정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들이 위법한 절차로 수집되었기 때문에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증거가 없으므로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기에, 사건을 다시 재판하라며 하급심으로 돌려보낸(파기환송) 것입니다.
이 판결은 수사기관에 디지털 증거 수집 시, 압수·수색의 대상을 물리적 기기에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그 기기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원격 서버까지 포함할 것인지를 영장에 매우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의 컴퓨터, 모바일 속 자료는 하늘나라 어딘가에 업로드 되어 있고, 보이지 않게 연결(로그 인)되어 있다는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