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9. 21. 선고 2018도13877호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에서 공보한 위 판결의 보도자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는 한동안 그 판결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2018도13877호’.
그저 무미건조한 숫자의 나열 속에, 한 단어가 똬리를 튼 뱀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강제(強制)’.
법은 이 두 글자로 폭력과 추행을 묶어두고 있었다.
그는 궁금했다.
사법이라는 거대한 지성이 40여 년간 지켜온 이 ‘강제’라는 말의 참된 ‘소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소리의 의미를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한복판에, 15세 소녀가 있었다. 4촌 친족의 집, 방 안에서 피고인은 소녀를 끌어안고 침대에 쓰러뜨린 후, 티셔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졌다.
원심 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소녀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법은 그곳에서 ‘강제’의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이다. 40여 년간 대법원이 지켜온 ‘항거곤란’이라는 견고한 성벽. 법은 그 성벽 안에서만 들려오는 처절한 저항의 소리만을 ‘강제’의 증표로 삼아왔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정조(貞操)의 수호를 요구하던 옛 시대의 메아리이자, 법이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의 소리였다.
그러나 2023년 9월 21일, 대법원은 마침내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했다.
전원합의체.
열두 명의 대법관(다수의견)이 듣고자 한 새로운 소리는 더 이상 ‘항거가 꺾이는 파열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인격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아픔의 소리였다.
법의 보호법익이 ‘정조’라는 낡은 개념에서 ‘개인의 존엄과 자유’로 옮겨왔음을 선언한 이상, 법의 청력(聽力)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숙명과도 같은 결단이었다.
그들은 말했다.
‘강제’의 증표가 되는 폭행이란, 상대의 저항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강력함일 필요가 없다고.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가해지는 모든 ‘불법한 유형력’ 그 자체가 바로 ‘강제’의 소리라고.
이는 마치, 지금껏 특정 주파수의 처절한 비명만을 폭력으로 인식하던 법이, 이제는 그보다 훨씬 낮은 음역대의 단호한 ‘싫다’는 목소리까지 듣기 시작했음을 의미했다.
물론, 그 거대한 합창 속에서도 다른 소리를 내는 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명의 대법관(별개의견)은 굳건히 옛 소리를 고집했다. ‘강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 속에는 이미 ‘자유의사를 억누르는 위력’이 담겨 있으며, ‘항거곤란’이라는 기준이 있어야만 다른 추행죄들과의 경계가 분명해진다고 그는 주장했다.
성범죄 처벌의 공백은, ‘죄형법정주의’라는 대원칙상 부득이한 것이라는 그의 목소리는 법의 안정성과 체계적 정합성을 옹호하는 낮은 울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옛 소리를 고집한 대법관조차 이 사건의 결론, 즉 원심 파기라는 데에는 동의했다는 점이다. 그의 귀에도, 설령 옛 기준에 따르더라도, 원심이 소녀의 고통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했던 것이다.
결국 대법원은 40년 묵은 판례를 변경했다. 법은 이제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대신, 원치 않는 신체 접촉 그 자체에 담긴 폭력의 소리를 듣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다시 판결문의 첫 장으로 돌아가 ‘강제’라는 단어를 들여다보았다.
그 두 글자는 그대로였지만, 그는 이제 그 안에서 전과는 다른 외침이 울려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한 시대의 법이 자신의 한계를 고백하고, 더 넓고 깊은 곳의 아픔을 향해 귀를 열어가는 과정에 대한, 길고 낮은 응답의 소리였다. 판결은 끝났지만, 그 소리가 우리 사회에 남긴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판결의 핵심]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Q1. 예전에는 무엇이 문제였나요? (종전 판례)
과거 법원은 강제추행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이나 협박이 피해자가 '저항하기 매우 어려울(항거곤란)' 정도로 강력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문제점 : 이 기준은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왜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나?", "왜 소리치지 않았나?"와 같은 질문이 나오기 쉬운 구조였죠. 이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고,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Q2. 이번 판결로 무엇이 바뀌었나요? (새로운 판례)
전원합의체 판결로 '저항하기 매우 어려울 정도'라는 높은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제 강제추행에서의 '폭행·협박'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폭행: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가해지는 모든 불법적인 신체 접촉을 의미합니다. 힘의 강약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협박: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모든 해악의 고지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이제 법정의 질문이 바뀐 것입니다. "피해자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저항했는가?"를 묻는 대신, "가해자가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사용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Q3. 이 판결이 왜 중요한가요? (그리고 남은 과제는?)
이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보호 대상이 ‘정조’가 아닌,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임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습니다. 원치 않는 성적 행위를 거부할 권리가 핵심이며, 그 권리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침해되었다면 범죄가 성립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성폭력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변화된 인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다만, 대법원은 이 판결이 '동의 없는' 모든 성적 행위를 처벌하는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강제추행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가해자의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합니다.
또한, 이번 판결이 ‘항거곤란’이라는 높은 기준을 낮춘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한편으로는 ‘불법한 유형력’이라는 새로운 기준이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떻게 적용될지 명확하지 않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강제’의 범위가 법관의 해석에 따라 과도하게 확장될 경우,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이 흔들릴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계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향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입법을 통해 그 기준을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