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수수색 시 참여 주체는 누구인가?(2021도 11170호)
한 대학교 강사 휴게실, 오랫동안 아무도 찾지 않던 낡은 PC 두 대가 먼지 속에 잠들어 있었다.
이 PC들은 전임자로부터 '퇴직자들이 두고 간 물건이니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을 들은 조교가 관리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주인 없는 PC'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을 파헤치던 검찰이 이 휴게실을 찾아온다. 당시 검찰은 피고인의 표창장 위조 등 여러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었다. 수사관은 조교의 협조를 얻어 PC 한 대의 전원을 켰다. 그 안에 담긴 전자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수사관과 조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갑자기 '퍽' 소리가 나면서 PC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다. 현장에서의 확인이 불가능해진 다급한 상황. 결국 수사관은 학교 측에 요청해 이 '주인 없는 PC' 두 대를 통째로 넘겨받는다.
대검찰청으로 옮겨진 PC.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사건의 흐름을 뒤바꿀 '결정적 증거'였다. 피고인이 문제 되는 사건의 일시경, 바로 이 PC를 이용해 문제의 표창장을 위조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새로운 공소사실을 추가했다.
하지만 피고인 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 PC는 한때 내가 사용했던 것이다. 내 허락도, 내가 지켜볼 기회도 없이 마음대로 열어 본 증거는 위법하다!"
과연 법원은 누구의 손을 들어줬을까? 결정적 증거는 마침내 법정에 설 수 있었을까?
이번 '판. 작. 썰'에서는 'PC 압수수색' 과정을 따라가 본다.
'퍽' 소리와 함께 시작된, 디지털 증거의 운명을 가른 치열한 법정 다툼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퍽' 소리와 함께 꺼져버린 PC. 그 안에 잠들어 있던 파일은 피고인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 증거가 되었다. 검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지만, 변호인은 이 증거의 출생부터가 불법이라며 칼을 빼 들었다. 법정은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전쟁터가 되었다.
검찰의 주장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저희는 PC를 훔치거나 강제로 빼앗은 것이 아닙니다. 당시 PC를 보관하고 관리하던 대학교 측으로부터 '임의로 제출'받은 것입니다. 심지어 학교 관계자들은 PC를 넘겨주면서, 디지털 포렌식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까지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모든 절차는 관리자의 자발적인 협조 아래 이루어졌습니다. 이 증거는 100% 합법입니다!"
검찰의 논리는 '관리자 동의'라는 단단한 갑옷을 두른 듯 보였다. PC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학교 측이 동의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맞선 피고인 측의 반박은 날카로웠다.
"PC라는 껍데기는 학교가 관리했을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정보, 즉 데이터의 주인은 바로 나, 피고인입니다. 나는 이 사건의 '실질적인 압수수색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왜 내 정보가 탈탈 털리는 그 중요한 순간에 정작 나는 그 자리에 있을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했습니까? 이것은 명백한 절차 위반이며, 이렇게 얻은 증거는 독이 든 나무의 열매(독수독과)와 같아 증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은 '참여권'이라는 헌법상의 권리를 방패로 내세웠다. 압수수색 과정에 당사자를 참여시키는 것은 수사기관의 권력 남용을 막고, 증거가 왜곡되거나 조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 속, 마침내 대법원은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메스로 도려내기 시작한다. 바로 '압수수색 당시, PC를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한 자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대법원의 판단은 냉철했다.
피고인이 과거에 그 PC를 개인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하더라도, 압수가 이루어진 그 시점에는 이미 피고인의 손을 떠나 있었다. PC는 거의 3년 가까이 대학교 강사휴게실에 보관되어 있었고, 이를 처분할지, 다른 사람에게 공용으로 쓰게 할지 결정할 권한은 오롯이 학교 측에 있었던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은 압수 당시 PC에 대한 '현실적 지배·관리권'이 피고인이 아닌 대학교에 있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PC를 분석할 때 참여권을 보장해야 할 대상은 현실적 관리자인 '대학교 측'이며, 검찰은 실제로 학교 측에 참여 의사를 물었으나 그들이 포기한 이상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즉, 피고인은 그 PC의 '실질적인 압수수색 당사자'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주인(정보주체)이라는 사정만으로, 자신이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도 않은 물건의 압수수색 과정에 모두 참여할 권리를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대법원은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했다. '주인 없는 PC'가 남긴 디지털 증거는 마침내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할 자격을 얻게 된 것이다.
이 판결은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내 손을 떠난 디지털 기록들, 내가 잊고 지낸 오래된 하드디스크 속 '나의 흔적'들은 과연 어디까지 나의 것일까? 이 사건은 그 권리의 경계가 '기억'이 아닌, '현실적 지배'라는 차가운 선 위에 그어진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대법원의 판결로 '주인 없는 PC' 사건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남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우리 곁에 맴돌고 있다. 피고인이 그토록 필사적으로 주장했던 '참여권'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잠시 시간을 되돌려, 이 보이지 않는 방패에 얽힌 법의 속사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
'참여권'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감시할 권리'다.
상상해 보라. 경찰이 당신의 집을 수색하는데, 당신을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잠근 채 모든 것을 뒤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들이 무엇을 가져가는지, 혹시라도 영장에 없는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는지, 나아가 엉뚱한 물건을 몰래 두고 나오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게 될 것이다.
참여권은 바로 이런 불안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다. 수사기관이 증거를 왜곡하거나, 혐의와 무관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복제해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사자에게 감시자의 자격을 주는 것이다. 특히 모든 것이 0과 1로 기록되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원본의 '무결성'을 지키고,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이 참여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자, 그럼 이 사건의 진짜 딜레마로 돌아와 본다. 이 강력한 방패, '참여권'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변호인의 주장은 간결했다. "PC 안에 담긴 정보의 주인이 나다. 그러니 당연히 내가 참여권의 주인이다!". 일리 있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법의 메스가 향한 곳은 데이터의 주인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압수수색 그 순간, 그 물건을 현실적으로 지배하고 관리하는 자가 누구인가'였다.
법원은 이렇게 질문을 던진 셈이다.
"검찰이 대학교 강사휴게실에 찾아간 그날, 그 시각에, 과연 누가 그 PC를 마음대로 처분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는가?"
답은 명확했다. 피고인은 이미 3년 가까이 그 PC에 대한 현실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대학교는 그 PC를 보관하며 관리했고, 공용으로 사용하게 하거나 임의로 처리할 수도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대법원은 참여권이라는 방패의 주인을 '데이터의 과거 사용자'가 아닌 '기기의 현재 관리자'인 대학교 측으로 보았다. 그리고 검찰은 원칙대로 관리자인 대학교 측에 참여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이 스스로 권리를 포기했으므로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결국 , 이 사건은 디지털 세상에서 나의 '흔적'과 '권리'는 내가 그것을 기억하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담은 그릇을 '현실에서 누가 지배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무심코 남겨두고 온 디지털 유품들이 던지는 묵직한 교훈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대의 낡은 PC가 남긴 법적 논쟁을 따라왔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질문은 이제 시작입니다. 이 판결의 가장 깊은 곳에는, 대법원 스스로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거대한 딜레마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바로 ‘참여권’이라는 방패를 과연 누구에게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현재 대법원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저울을 번갈아 사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첫 번째 저울은 ‘현실적 지배권’이라는 이름의 물리적인 저울입니다.
이번 ‘강사 PC 사건’이 바로 이 저울 위에 올라갔습니다. 법원은 3년간 PC를 방치하여 물리적 지배권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현실’을 기준으로, 데이터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기기의 관리자’가 ‘기억의 주인’보다 우선했습니다.
두 번째 저울은 ‘실질적 기본권 침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저울입니다.
카카오톡 서버 압수수색 사건(대법원 2022. 5. 31. 자 2016모 587 결정) 등에서 본 ‘실질적 피압수자’ 개념이 이 저울의 추입니다. 카카오톡 이용자는 서버를 물리적으로 지배하지 않지만, 그 안의 대화 내용은 자신의 사생활과 직결되므로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기억의 주인’이 ‘기기의 관리자’보다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문제는, 대법원이 언제 어떤 저울을 사용할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약 ‘강사 PC 사건’의 저울을 카카오톡 사건에 들이댄다면, 서버 관리자인 카카오 회사만이 참여권을 가질 뿐, 이용자는 배제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카카오톡 사건의 저울을 ‘강사 PC 사건’에 적용한다면, 데이터의 주인인 피고인의 사생활과 방어권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참여권을 인정했어야 마땅합니다.
결국 우리는 혼란스러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무엇이 기준입니까?
물리적 지배를 상실한 기간이 3년이라서 문제였을까요? 1년이었다면 달랐을까요? 서비스 계약 관계가 있으면 ‘실질적’ 주인이 되고, 개인 물건을 방치하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은 법적 안정성을 해치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수사기관은 현장에서 누구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국민은 자신의 디지털 기록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절차로 국가에 의해 열람될지 예측할 수 없게 됩니다.
‘실질적 피압수자’라는 개념은 기존의 법리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대법원의 고심의 산물로 보이지만, ‘주인 없는 PC’가 남긴 참여권 문제에 대한 질문에 우리 사회와 사법부가 어떤 답을 내놓을지,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하드디스크는, 그리고 당신의 권리는, 바로 그 답에 달려있습니다.
다음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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