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제조 공정 정보 조합의 비밀
여기 한 이야기가 있다. 법과 기술, 인간의 욕망과 배신이 얽힌, 비밀이라는 이름의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다. 대법원 2022도16851 판결 해설을 바탕으로 하되, 그저 법조문의 건조한 나열이 아니라 그 속에 숨겨진 의미의 결을 따라가 보려 한다.
법은 먼저 '영업비밀'이란 무엇인가 묻는다. 그것은 세상의 빛 아래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바람처럼 떠돌거나 돌처럼 널려 있지 않은 것. 간행물이나 떠도는 소문 속에 그 모습이 뚜렷이 잡히지 않아, 그 비밀을 품은 자를 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런 것이다. 제아무리 주인이 '이것은 비밀이다' 외치며 자물쇠를 채워둔들, 이미 그 내용이 장터의 이야기꾼 입에 오르내리듯 알려졌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의 옷을 입을 수 없다.
회사의 골방에서 연구에 몰두하던 직원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다른 둥지를 틀거나 제 잇속을 채우려 마음먹고, 품었던 자료를 몰래 들고 나섰다. 법은 이를 '업무상 배임'이라 부르지만, 그가 들고 나선 자료가 반드시 '영업비밀'이라는 엄격한 이름표를 달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자료 역시 세상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깊이를 지녀야 한다. 누구나 손쉽게 얻을 수 없어야 하고, 그것을 만들어내기까지 주인이 흘린 땀과 시간, 비용의 무게가 느껴져야 하며, 그것을 손에 쥔 자에게 경쟁이라는 싸움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할 만한 가치를 지닌,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어야 한다.
이제, 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들어간다. 어떤 정보가 있다. 마치 조각보처럼, 이미 세상에 알려진 낡은 천 조각들을 기워 만든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만일 그 기워 맞춘 방식 자체가 새롭고, 그 바느질 솜씨가 해당 기술의 장인들 사이에서도 생소하며, 그 완성된 조각보 전체가 낱개의 천 조각들이 가진 의미 이상을 담고 있어, 결국 그 조각보를 만든 장인의 손길 없이는 누구도 온전히 그 형태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면, 설령 낱개의 천 조각들이 낡고 알려진 것이라 할지라도, 그 조각보 전체는 여전히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남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대법원이 던진 화두다.
이야기는 한 피해 회사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가정에서도 손쉽게 맥주를 빚을 수 있는 기계를 꿈꿨다. 2014년 가을부터 연구에 매달렸고,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땀을 쏟았다. 이듬해 여름, 첫 결실인 시제품이 나왔고, 가능성의 빛을 보았다. 피고인 1부터 5를 포함한 열세 명의 정예 부대가 꾸려졌고, 이듬해 봄과 초여름에 걸쳐 두 번의 개량을 거듭하며 60억 원이 넘는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2016년 초, 그 정예 부대의 핵심 인물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피고인 1부터 5가 그들이었고, 그들은 바다 건너 미국 땅에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검찰의 주장은 이러하다. 그들은 옛 동료들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피해 회사가 애써 쌓아 올린 기술과 경영 정보라는 성채의 비밀 통로를 이용해 자신들의 새로운 성을 쌓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탐낸 것은 가정용 맥주 제조기의 '공정흐름도', '손잡이 부분 도면', '조사자료', 그리고 '보고서 파일' 등이었다. 그들은 이 정보들을 밑천 삼아 2016년 상반기 내내 자신들의 맥주 기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검찰이 그린 그림이었다. 그 행위는 단순한 기술 모방을 넘어, 옛 회사의 영업비밀을 침해하고, 업무상 임무를 배신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피해 회사에는 손해를 입힌 범죄라는 것이었다.
1심 법정에서는 조사자료와 보고서 파일만이 유죄의 낙인을 받았다.
이 두 정보는 비밀로서 갖춰야 할 세 가지 덕목, 즉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비공지성), 비밀로 지키려는 노력(비밀관리성), 그리고 그 자체의 값어치(경제적 유용성)를 모두 지녔다고 보았다. 피고인들이 이를 이용한 흔적도 뚜렷하며, 함부로 반출하고 돌려주지 않은 것은 명백한 배신 행위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공정흐름도 파일'과 '손잡이 부분 도면 파일'에 대해서는 무죄의 깃발을 들었다. 세상에 그 비밀의 깊이가 충분히 감춰지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특별한 기술적 성취로 보기 어려워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라 부르기에도 미흡하다고 보았다.
2심의 시선은 또 달랐다. 1심의 유죄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손잡이 부분 도면 파일에 대해서는 1심과 달리 유죄를 선고했다. 그 역시 비밀의 세 덕목을 갖추었고, 피고인들이 이를 사용한 증거도 명백하며,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만든 것은 배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공정흐름도 파일 관련 혐의는 1심처럼 무죄로 판단했다. 마치 그 흐름도 안에 담긴 기술의 맥락이 세상의 공기와 너무 많이 섞여버렸다고 여기는 듯했다.
검사가 이 판단에 승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대법원의 문을 두드리며 물었다. 2심은 왜 공정흐름도 파일의 영업비밀성을 부정하면서 특허법의 잣대인 '진보성', 즉 기존 기술에서 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는가? 영업비밀의 요건과 특허의 요건은 그 길이 다른데, 어찌 같은 기준으로 잴 수 있단 말인가?
또한, 공정흐름도 파일의 비밀성은 그 안에 담긴 개별 기술 요소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만들어내는 전체 그림, 그 총체적인 구성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원심은 어찌하여 그 전체 그림을 열 조각으로 나누어 기존 기술과 비교한 감정 결과에만 기대어 그 가치를 폄하했는가?
그리고 그 공정흐름도 파일 안에는, 피해 회사가 수많은 실패와 반복 실험 끝에 찾아낸 최적의 맛을 내는 비법, 즉 온도와 시간, 압력 같은 구체적인 수치들이 숨겨져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회사의 심장과 같은 핵심 비밀이 아니고 무엇인가? 원심은 어찌하여 그 안에 구체적인 정보가 담겨 있지 않다고 섣불리 판단했는가? 검사의 질문은 집요했다.
알려진 조각들을 모아 만든 정보의 비밀성에 대한 문제. 세상의 여러 견해와 판례들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을 가리킨다.
개별 요소가 알려졌다는 사실만으로 전체의 비밀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조합' 자체가 알려져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조합이 단순히 낡은 조각들을 기계적으로 붙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창출하거나, 기존에 없던 독특한 구성이나 방식을 보여주며 경쟁적 이점을 준다면, 또는 그 조합을 이루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면, 그것은 비밀로서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
수많은 판례들이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한다. 여러 파일이 합쳐져 하나의 영업비밀을 형성할 수 있고, 설계 자료 일부가 공개되었어도 전체 기술 정보가 알려진 것이 아니라면 비밀성은 유지되며, 공개된 소스코드를 조합/수정하여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기술력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실패한 연구 데이터 같은 '네거티브 정보'조차 유용한 비밀이 될 수 있다고 법원은 말한다.
이러한 논의의 흐름 속에서, 대법원은 마침내 이 사건 공정흐름도 파일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원심은 그 안에 담긴 개별 기술들이 이미 알려진 것이고, 전체적으로도 새로운 것이 없으며,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선은 더 깊었다.
공정흐름도는 스무 장이 넘는 방대한 자료였고, 거기에는 개별 부품과 작동 순서뿐만 아니라, 이들을 유기적으로 엮어 맥주 제조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전체적인 기계 구조와 유로(流路)의 설계도가 담겨 있었다.
개별 부품이나 기술 요소는 기존 제품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르나, 이들을 이렇게 조합하여 완전 자동화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현한 전체 구성은 이전에 없던 것이며, 업계에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기존 제품들은 일부 공정만을 다루었을 뿐이었다. 더욱이 이 흐름도는 피해 회사가 1년 넘게 정보 수집과 실험을 거듭하며 만들어낸 결과물로, 경쟁자가 이를 맨손으로 얻으려면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비록 알려진 정보들의 조합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그 조합 자체가 새롭고 업계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전체로서 기존 정보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고, 보유자를 통하지 않고는 쉽게 얻을 수 없으므로, 이 공정흐름도 파일은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은 정보', 즉 비공지성을 갖춘 영업비밀이라고 대법원은 선언했다. 원심의 판단은 잘못되었기에,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돌려보낸 것이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사건의 결론을 넘어,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정보의 시대, 모든 창조는 결국 기존 정보의 재구성이며 조합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모방이고 어디부터가 창조인가, 어디까지가 공개된 지식이고 어디부터가 보호받아야 할 비밀인가 하는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이 판결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을 제시했다. 조각들이 낡았다고 해서 그것들을 엮어 만든 새로운 전체의 가치마저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 조합 자체가 지닌 독창성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의 가치를 법이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수많은 기술과 정보의 다툼 속에서 중요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비밀의 경계를 긋는 일, 그것은 결국 창조와 노력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