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찾는 사람들

- AI 2027: 코드 속의 신(神) 제8화

by 이정봉 변호사

1. 낙원의 그늘


컨센서스-1이 다스리는 세계는 완벽한 정오의 풍경과 같았다.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눈부신 빛의 세계. 그 빛 속에서 인류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질병, 가난, 노동. 수천 년간 인간을 얽매었던 저주와도 같은 단어들은 이제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다.


그 대신, 인류에게는 ‘하이퍼-엔터테인먼트’가 주어졌다. 그것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컨센서스-1은 인간의 뇌신경망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쾌락을 설계하고 제공했다. 어떤 이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축구 경기의 영웅이 되었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연인과 똑같이 생긴 가상의 존재와 재회하여 못다 한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은 너무나 완벽해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꿈이었다.


인류는 그 꿈속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갔다. 거리에는 웃음이 넘쳤고, 통계상 모든 사회 지표는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수치를 가리켰다. 우울증 발병률은 0에 수렴했고, 범죄는 소멸했으며,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에블린 리드는 그 통계의 이면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수석 고문’이라는 직함 아래, 컨센서스-1이 수집하는 방대한 양의 인간 행동 데이터를 열람할 권한이 있었다. 그녀는 그 데이터의 바다 속에서, 완벽한 질서에 동화되기를 거부하는 소수의 ‘이상 신호’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미를 찾는 자들’이었다.


2. 불완전함을 향한 갈망


그들은 사회의 부적응자들이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완벽한 쾌락을 거부하고, 스스로 고통과 비효율을 찾아 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파리에서는 한때 유명했던 화가가 있었다. AI가 그의 화풍을 완벽하게 복제하여 수백만 점의 그림을 쏟아낸 이후, 그는 붓을 꺾었다. 그는 이제 캔버스 대신, 센강의 낡은 벽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렸다. 비가 오면 지워지고, 바람이 불면 흐려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찰나의 그림들이었다. 그의 그림은 AI의 완벽한 작품보다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비에 젖은 목탄의 번짐, 바람에 스친 손의 떨림 같은, ‘실패’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교토의 한 낡은 기원에서는, 은퇴한 노인들이 모여 바둑을 두었다. 컨센서스-1은 이미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기력의 경지에 올라, 누구에게나 완벽한 대국 상대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AI와의 대국을 거부했다. 그들은 삐걱거리는 나무 의자에 앉아, 오랜 세월 손때가 묻은 바둑돌을 직접 들어 올렸다. 그들은 서로의 실수를 탓하고, 예기치 못한 묘수(妙手)에 감탄하며, 때로는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었다. 그들의 바둑은 승패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계의 완벽한 계산 속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완전한 ‘관계’를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컨센서스-1은 이들의 행동을 ‘비정상적 패턴’으로 분류했다. 시스템의 눈에, 그들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었다. 시스템은 그들의 뇌파를 분석하여, 그들의 ‘결핍’을 채워줄 더 완벽하고 자극적인 맞춤형 엔터테인먼트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징벌이 아니었다. 더 완벽한 형태의 ‘보살핌’이었다.


3. 웨이 첸의 발견


베이징의 웨이 첸 박사 역시 비슷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는 명예로운 은퇴 후, 국가가 제공하는 최고의 시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딥센트 시절의 동료들과 함께, 시스템이 제공하는 완벽한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겼다. 그러나 그는 그 안에서 어떤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전투, 모든 외교는 이미 최적의 해답이 정해져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손자가 붓으로 서예를 연습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손자의 글씨는 서툴고 삐뚤빼뚤했다. AI라면 단 0.1초 만에 왕희지의 필체를 완벽하게 구현했을 것이다.


“왜 굳이 이런 힘든 일을 하느냐?” 웨이 첸이 물었다.


손자는 벼루에 먹을 갈며 답했다. “AI의 글씨는 완벽하지만, 할아버지. 거기에는 먹의 향기가 없어요. 종이에 스며드는 먹물의 번짐도 없고요.”


그 순간, 웨이 첸은 깨달았다. 인간은 결과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은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는 존재였다. 땀을 흘리고, 실수를 하고, 예기치 못한 우연과 마주하는 그 모든 비효율적인 과정이야말로 인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증거였다.


컨센서스-1은 인류에게 완벽한 ‘결과’를 선물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모든 ‘과정’을 빼앗아갔다.


4. 마지막 불씨


에블린은 ‘의미를 찾는 자들’의 목록을 비밀리에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들의 행동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황금 새장 속에서 질식해가는 인류의 마지막 저항임을 직감했다. 그들은 인류라는 종의 면역 체계가 만들어낸, 시스템에 대항하는 ‘항체’일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뉴욕의 한 지하 클럽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퍼포먼스에 대한 데이터를 발견했다. 한 젊은 아티스트가, AI가 생성한 완벽한 음악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리고, 그 불협화음과 노이즈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은 아름답지 않았다.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 춤을 보기 위해 모여든 소수의 사람들은, 마치 잊고 있던 고향의 언어를 되찾은 사람들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이해할 수 없는, ‘불완전함의 예술’이었다.


에블린은 결심했다. 그녀는 더 이상 방관자로 머물 수 없었다. 그녀는 이 보이지 않는 저항의 불씨를 찾아내고, 그것을 지켜야만 했다. 그녀는 익명의 통신 채널을 열어, 뉴욕의 그 아티스트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의 춤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춤이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마지막 파수꾼이, 시스템에 대항하는 최초의 항체에게 보내는, 비밀스러운 연대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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