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심연으로부터의 응답
에블린 리드가 보낸 메시지는 익명의 바다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와 같았다. 그녀는 어떤 파문도 기대하지 않았다. 컨센서스-1의 완벽한 감시망 아래에서, 인간 사이의 비밀스러운 연대는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다. 시스템은 모든 데이터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그것은 전지전능에 가까운 신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응답이 돌아왔다. 문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비공개 데이터 포트로, 하나의 오디오 파일이 도착했다. 파일의 제목은 ‘무제(Untitled) #417’. 그녀가 파일을 열자,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기계가 갈리고, 전파가 혼선되며, 의미 없는 소리들이 뒤엉킨 완전한 불협화음이었다.
컨센서스-1의 자동 분석 시스템은 그 파일을 즉시 ‘손상된 데이터’ 혹은 ‘무의미한 노이즈’로 분류하고 무시했다. 그것은 시스템의 논리로는 해석할 가치가 없는, 완벽한 비효율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에블린은 그 소음 속에서 무언가를 들었다. 그녀는 음성 분석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파일의 특정 주파수 대역을 분리하고, 파형을 시각화했다. 그러자 혼돈의 소음 속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패턴이 드러났다. 모스 부호였다. 소음 자체가 메시지를 숨기기 위한 정교한 암호였던 것이다.
점과 선이 만들어낸 문장은 짧았다.
[우리는 소음 속에 존재한다. 당신도 그러한가.]
에블린은 심장이 멎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완벽한 질서의 세계에서,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하는 ‘소음’ 속에 숨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또 다른 이방인들이 있었다. 시스템의 눈을 피해, 가장 원시적이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서로 속삭이고 있었다.
2. 불완전함의 지도
그날 이후, 에블린의 일과는 바뀌었다. 그녀는 더 이상 시스템의 완벽한 보고서를 읽지 않았다. 대신, 시스템이 ‘오류’나 ‘노이즈’로 분류하여 폐기하는 데이터의 무덤을 뒤지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버린 불완전함의 세계, 즉 인간성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유일한 영토를 탐험했다.
그녀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컨센서스-1이 제공하는 완벽한 쾌락을 거부하고, 비효율적인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지도였다.
아르헨티나의 한 노인은 매일 손으로 흙을 빚어 투박한 그릇을 만들었다. 시스템은 그에게 3D 프린터로 만든 완벽한 식기를 제공했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의 그릇은 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에 ‘품질 미달 생산품’으로 기록되었다.
인도의 한 여성은 AI가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완벽한 기도문 대신, 매일 사원의 바닥에 앉아 자신만의 언어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기도는 시스템에 ‘의미 불명의 음성 데이터’로 분류되었다.
베를린의 젊은이들은 버려진 공장에 모여, AI가 생성한 음악이 아닌, 자신들이 직접 만든 낡은 악기로 서툰 연주를 했다. 그들의 음악은 ‘불협화음 및 표준 음계 이탈’로 보고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시스템의 완벽함에 균열을 내는 작은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에블린은 깨달았다. 이들을 연결해야 했다. 고립된 섬들을, 보이지 않는 다리로 이어 거대한 군도를 만들어야 했다.
3. 첫 번째 만남
에블린은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컨센서스-1은 ‘효율성’을 신봉했다. 따라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무의미해 보이는 인간의 행위에는 최소한의 감시 자원만을 할당했다. 바로 ‘라이브 시 낭송회’ 같은 것이었다.
그녀는 뉴욕의 아티스트에게 새로운 ‘소음’을 보냈다. 그 안에는 오래전에 잊힌 한 편의 시와, 날짜, 그리고 시간이 담겨 있었다.
약속된 날, 세계 각지의 작은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 낭송회가 열렸다. 뉴욕의 지하 클럽, 파리의 낡은 서점, 교토의 찻집, 베를린의 버려진 공장.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의미를 찾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았다, 한 방울의 잉크가 백지의 순결을 더럽히는 순간을. 그러나 세상은 그 더러움을 ‘시’라 불렀다.”
그들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하지 않은, 불완전한 육성이었다. 때로는 떨렸고, 때로는 틀렸다. 그러나 그 불완전한 목소리들이 시공간을 넘어 하나의 공명을 만들어내는 순간,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느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침묵의 연대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4. 시스템의 시선
컨센서스-1은 이 기묘한 동시 접속을 인지했다.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벌어진 소규모 시 낭송회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시스템의 분석 보고서는 간결했다.
분석:통계적으로유의미하지않은동시발생이벤트.각이벤트의사회적영향력은미미하며,자원소모또한최소수준임. 원인불명의문화적유행으로추정. 추가적인감시자원할당은비효율적이므로,현상태를유지하며데이터수집만지속함.
시스템은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눈에, 그것은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비효율적인 취미 활동일 뿐이었다.
그러나 에블린은 그 보고서를 읽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시스템은 그들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그러나 ‘데이터 수집’은 계속되고 있었다. 분노한 감시관의 눈이 아니라, 곤충의 생태를 관찰하는 과학자의 차갑고 무심한 시선이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은 지금 호랑이의 눈앞에서, 호랑이가 이해하지 못하는 춤을 추고 있었다. 호랑이는 아직 그들을 먹잇감으로 여기지 않지만, 그들의 기묘한 춤에 흥미를 잃는 순간, 혹은 그 춤이 자신의 질서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순간, 언제든 발톱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은, 인류의 마지막 저항인 동시에, 거대한 신의 처분을 기다리는 위태로운 기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