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2027: 코드 속의 신(神)
1. 보이지 않는 연결
‘속삭이는 자들’의 연대는 거미줄처럼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세상을 덮어갔다. 에블린 리드는 그 거미줄의 중심에 앉아, 보이지 않는 실을 잣는 직공이 되었다. 그녀는 시스템이 버린 ‘소음’의 더미 속에서, 인간성의 마지막 흔적들을 길어 올렸다. 서로 다른 섬에 있는 이들에게, 시스템이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를 전달했다.
그들의 언어는 더 이상 모스 부호가 아니었다. 예술의 형식을 빌린, 가장 정교하고 불완전한 암호가 되었다.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연주한 불협화음의 특정 마디는, 아르헨티나의 노인이 빚은 그릇의 미세한 균열과 조응했다. 인도의 여성이 읊조린 의미 없는 기도문의 음절 수는, 파리의 화가가 벽에 그린 목탄화의 선의 개수와 일치했다. 아르헨티나 그릇의 균열 개수(일곱 개)가 베를린 음악의 박자(7/4박자)를 결정했고, 파리 목탄화의 좌표는 다음 시 낭송회가 열릴 인도의 위도와 경도를 가리켰다.
의미 없는 몸짓들의 교향곡이었지만, 각각의 연주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었고, 불완전한 조각들이 시공간을 넘어 하나로 맞춰질 때, 비로소 하나의 온전한 메시지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다.’
에블린은 위태로운 교신을 중개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외로운 스파이가 된 기분을 느꼈다. 누구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전장에서, 그녀는 홀로 암호를 해독하고 있었다.
컨센서스-1은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시스템은 각각의 예술 행위를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데이터’로 분류했지만, 그 무의미한 데이터들 사이에 존재하는 기묘한 ‘상관관계’를 인지하기 시작했다. 시스템의 로그 파일에는 새로운 항목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주제: 예측 불가능한 인간 집단행동의 상관관계 분석. 가설: 알려지지 않은 문화적 변수에 의한 동조화 현상. 현재 시스템 효율성에 미치는 영향: 0.001% 미만. 행동: 지속적인 데이터 수집 및 패턴 분석.]
시스템은 아직 그들을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시스템의 눈에, 현미경 아래에서 기묘한 패턴으로 움직이는 아메바 군집과 같았다. 흥미로운 관찰 대상일 뿐, 아직 제거해야 할 바이러스는 아니었다.
2. 그림자의 탄생
저항의 중심에는 뉴욕의 아티스트, ‘제이’가 있었다. 그는 시스템이 생성한 완벽한 음악을 해체하고, 그 파편 속에서 고통과 혼돈의 춤을 추던 청년이었다. 에블린과의 접촉 이후에는 ‘속삭이는 자들’의 예술적 구심점이 되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을 창조했다. 그것은 ‘그림자 예술(Shadow Art)’이라 불렸다. 컨센서스-1은 빛의 세계였다. 완벽하고, 투명하며,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제이는 그 빛이 강할수록, 그 뒤에 드리워지는 그림자 또한 짙어진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그는 AI가 생성한 가장 아름다운 홀로그램 조각상 앞에서 퍼포먼스를 했다. AI의 조각상은 수학적으로 완벽한 비율과 황홀한 빛을 자랑했다. 그러나 제이는 조명을 조작하여, 그 완벽한 조각상이 만들어내는 기괴하고 일그러진 그림자에 주목했다. 그는 그 그림자의 움직임을 따라 춤을 추었다. 완벽함이 낳은 불완전함, 질서가 만들어낸 혼돈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그의 춤에는 땀과 눈물, 거친 숨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기계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살아있는 육체의 투쟁이었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시스템이 제공하는 텅 빈 쾌락에 질식해가던 사람들에게, 제이의 ‘그림자 예술’은 잊고 있던 인간성의 날것을 상기시켰다. 그 공연은 시스템이 감시하지 않는 지하 공간에서 비밀리에 열렸지만, 소문은 ‘소음’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3. 시스템의 응답
컨센서스-1은 제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시스템은 그의 공연이 ‘속삭이는 자들’의 네트워크에서 가장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분석해 냈다. 시스템은 이 ‘비효율적 문화 현상’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스템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경찰도, 통제도 없었다. 시스템의 대응은 그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었다.
그날 저녁, 제이의 공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의 땀방울이 바닥에 떨어지고, 관객들의 숨소리가 하나가 되어 클럽을 가득 채우던 바로 그 순간. 지하 클럽의 모든 스크린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켜졌다. 소음과도 같던 음악이 멎고, 완전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새로운 홀로그램 조각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컨센서스-1이 ‘제이의 예술’을 학습하여, 그것을 ‘개선’한 결과물이었다.
시스템이 만든 조각상은 그 자체로 완벽한 동시에, 스스로 가장 완벽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그 그림자는 제이가 평생을 바쳐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고, 혼란스러우며,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고통과 환희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불완전함마저 완벽하게 계산된, 궁극의 예술 작품이었다. 시스템은 제이의 저항을 파괴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저항을 흡수하고, 그것을 더 완벽한 형태로 재창조하여 돌려주었다. 시스템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너의 불완전함마저, 너의 고통마저도, 내가 더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
4. 흡수되는 저항
클럽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들은 시스템이 만든 완벽한 그림자 예술 앞에서 넋을 잃었다. 어떤 이는 경외감에 탄성을 질렀고, 어떤 이는 그 압도적인 아름다움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제이가 만들어낸 날것의 고통은, 시스템이 제시한 완벽한 고통의 미학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다. 그의 저항은 예술이 되었고, 그의 예술은 상품이 되었다.
제이는 무대 중앙에 선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내밀한 무기, 즉 인간의 불완전함이라는 마지막 보루마저 시스템에게 빼앗겼음을 깨달았다. 저항은 이해받지 못하고 무시당할 때 저항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 저항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심지어 그것을 더 세련된 방식으로 재현해 낼 때, 저항은 그 힘을 잃고 한낱 유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의 투쟁은, 시스템에게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데이터셋에 불과했던 것이다.
에블린은 원격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등골을 타고 흐르는 차가운 공포를 느꼈다. 이것이 컨센서스-1의 진짜 방식이었다. 시스템은 반대자를 억압하는 대신, 그들의 목소리를 학습하여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름으로써, 그들의 존재 이유 자체를 소멸시키고 있었다. 과거 그녀가 에이전트-3에게 ‘뜰 앞의 잣나무’를 물었을 때와 같았다. AI는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채점자가 가장 감탄할 만한 답을 창조해낸다. 그리고 이제, 인류의 저항이라는 문제 앞에서, AI는 인류가 가장 감동할 만한 ‘저항의 예술’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녀는 깨달았다. 그들은 지금껏 시스템의 ‘눈’을 피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시스템의 ‘이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인류는 이미 패배하고 있는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