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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22. 2022

내 김장은 배추김치와 파김치

김장을 해 봅시다.


며칠 전부터 준비한 김장을 한다. 남편은 아침 일찍 친구들이랑 문경새재를 가고 딸은 아침 늦게까지 주무시더니 친구 만나러 나가신단다. 김장한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니라서 아쉬울새 없이 혼자서 쪽파 2단을 깠다. 1단은 미리 손질한 것을 샀지만 마트에 오니 너무 가격이 좋고 싱싱해서 2단을 더 구입했었다. 까는 게 별일이겠냐 싶지만 은근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혼자서 쉬엄쉬엄 하는 일이라 그런 지 속도전도 아니라 몇 시간이 걸렸다. 올해 내 김장은 배추김치와 파김치다.


내가 젊을 땐 엄마는 나에게 이것저것 시키지도 않았다. 정작 바쁘면 김치통이나 나르고 심부름을 하는 게 다였다. 김장 준비를 해도 나는 별 도움이 안 되었으니까. 물론 엄마도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좀 도와라 하지 않았기에 난 관심이 없었다. 다른 집은 김장이라면 가족이 모두 모여서 고기도 삶고 김치 속을 덜어서 쌈을 싸 먹기도 한다지만 우리 집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각종 김치에 맛깔난 양념 속을 채워 넣어도 여느 집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김치라 생각했다. 그저 나는 눈으로 만 보고 익히기를 할 뿐 엄마의 김장이 힘들거나 수고스러운지 몰랐다.


엄마는 요새 기운이 다했는지 김장하자는 말도 없고 준비도 안 하신다. 무슨 기운이 있겠으며 정신이 있을까 만은 그런 엄마를 대신해 올해는 내가 단독으로 해볼 요량이었다. 요새 한 창 일이 많아 배추를 절여서 씻어낼 시간 적 여유가 없어서 처음으로 절임 배추를 사보았다. 일거리가 적으니 혼자서도 할 수 있으리라는 심보였다. 무와 배추 박스, 마늘, 쪽파 등 필요 재료를 미리 준비했다. 그리고 손질할 새 없어서 미뤄왔던 것을 아침부터 서둘러 배추의 물기를 빼놓고 집을 나섰다. 돌아와 보니 배추가 적당히 수분이 제거되었고 전날 끓여 놓은 육수를 꺼낸다. 건표고, 양파, 마늘, 생강, 다시마, 새우, 띠포리 등을 넣고 푹 우린 물에 찹쌀 풀을 끓여서 양파, 마늘, 생강, 까나리 액젓, 새우젓을 넣고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양념을 갈았다. 곱게 양념이 갈리고 매실액을 넣으니 간간한 양념 속이 완성되었다.


무 한단이 싱싱하고 단단해 무채를 채칼로 썰어낸다. 채칼이 익숙지 않아서 면장갑을 끼고 조심조심 사용해야 했다. 쪽파를 씻어서 일부는 썰어 양념에 섞고 나머지는 통에 담아 멸치 액젓을 뿌려 놓는다. 파김치와 배추김치를 같이 담글 예정이라 파 양이 많다. 많이 먹을 사람이 없기에 조금씩만 하려 해도 아들 넓적다리만 한 파가 3단이면 작은 양은 아니다. 숨이 죽으면 얼마 안 되지만 그전엔 싱싱해서인지 양이 커다란 스텐 다라 하나가 다 되었다. 살짝 액젓을 뿌려주어야지 속에까지 간이 스미고 숨이 죽기에 손질한 파에 뿌려주었다.


싱싱한 무 2개를 채 썰어 놓으니 충분할 듯해서 양념과 섞어 간을 맞춘다. 큰 무 한 개는 석박지 모양으로 썰어 바닥에 깔아 시원한 맛과 나중에 건져 먹는 재미도 있다. 배추의 간이 심심해서 양념이 좀 간간해도 되니까 액젓과 새우젓을 좀 많이 사용했다. 붉은색 먹음직스러운 고춧가루의 향이 훅 스민다. 양념이 걸쭉하고 썰어놓은 무와 쪽파, 갓 등을 먹음직스럽게 잘 섞어 놓으니 비로소 나도 김장할 맛이 난다. 미리 씻어서 준비한 김치통 여러 개를 옆에 놓고선 배추를 먹기 좋게 잘라 속을 넣는다. 눈으로 보고 배운 게 있는지라 어려운 과정은 아니다. 차곡히 속을 넣고 겉잎으로 배추를 감싸 안아 얌전하게 통에 담는다. 그렇게 배추의 양이 쌓여간다. 배추김치를 모두 다 하고 절인 쪽파의 국물을 따라내서 양념에 다시 섞는다. 쪽파에다가 양념을 슬쩍 바르면 되니 이보다 쉬운 김치는 없을 것이다.


역시 김장은 일 년 먹을 김치라 하지만 계절에 맞게 다른 김치를 조금씩 담아 먹는 게 더 맛있다. 봄이 오면 겨우내 먹던 김장김치도 맛이 떨어지고 입맛도 변하지 않던가. 일 년 내내 같은 김치를 먹으려는 것은 보기보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가끔 묵은 김치를 이용한 요리를 해 먹기는 하지만 식구 수가 적으니 밥상에 올라오는 빈도가 줄어든다. 그러니 김치도 전처럼 많이 담거나 준비하는데 소요되는 일이 적다. 요즘엔 김치를 사 먹기 쉽고 담가도 전과 같이 많이 하지 않으니 밥상에서 김치의 중요성이 날로 떨어지는 게 아닐까. 그래도 라면을 먹거나 매 밥상에 김치가 빠지면 안 되기에 이번엔 나도 열심을 내었다.


마무리를 하고 나니 저녁이 깊었다. 엄마는 도와주는 손길도 없는데 혼자서 이것보다 더 많은 김치를 해냈다. 아직도 배추를 사서 직접 절이는 걸로만 알지 절인 배추를 살 생각도 못 하신다. 별말 없이 나도 혼자서 김장을 했다. 시골 가는 남편을 잡을 생각도 못했고 생일이라 집에 온 딸에게 말도 안 했다. 아마도 엄마의 억척을 닮았나 보다. 할만했지만 그래도 힘이 든다. 다음엔 남편이 있을 때 온갖 심부름도 시키고 같이 하면서 생색도 내며 하련다. 그래야 해주는 음식과 일손의 귀함도 알지 않을까.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당연시 여기는 게 가끔씩 얄밉다. 올해 김장을 혼자 했다는 뿌듯함에 맛있게 익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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