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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Nov 26. 2022

은행잎 비를 바라보며

아직 가을인가요?


오전 일찍 수업에 나선다. 출근하면서 운전하는 시간이 즐겁다. 되도록 버스나 지하철로 가까운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나 짐이 있고 이제는 시간이 더 중요한 시기다. 그러니 운전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당연히 수업 시간도 즐겁고 기쁜 마음이다. 내 수업 시간엔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간이 있다. 이런 시간이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기다리며 수업을 준비하는 시간, 나는 이런 시간이 좋다.


오늘은 브리오슈 밤식빵이다. 브리오슈는 버터, 설탕, 계란, 우유가 듬뿍 들어간 반죽이다. 브리오슈 반죽도 맛있는데 더군다나 밤을 듬뿍 넣고 소보로를 올리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인당 2개에서 반개씩 더 주었더니 입이 함박 만해진다. 요즘 밤식빵 가격이 비싸기도 하고 맛있는 알찬 식빵이 흔하지 않아서 일까. 수업 때 작은 반죽으로 만든 밤식빵을 미리 잘라 맛을 보았더랬다. 알찬 밤 조림이 듬뿍 들어간 빵이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식빵 속의 밤 다이스를 전 처리해서 부드럽고 특유의 통조림 냄새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양을 두 배로 늘렸더니 '이렇게 맛있을 수가?' 하는 맛이니까.


나는 빵을 만들고 나눠주는 이 시간을 사랑한다. 요리만 했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환호하고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런 때에 사람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리보단 제과제빵을 더 선호한다. 더구나 기술이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일로 생각한다. 조금 어설프게 알면 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알면 알수록 쉽지 않기도 하니까. 그런 면에선 벌써 직업으로 십수 년이 더 훌쩍 넘었다.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늘어가며 늘 가까이 두고 싶다는 거다. 그런 관심이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생각도 있고 몸도 있으니까.


책을 찾아보고 재료를 연구하며 내가 왜 이런 책들을 보는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다. 내가 가진 작은 씨앗들이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세월의 무게만큼 쌓아가고 커갔나 보다. 어느새 나도 자신감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는 게 늘어만 가니 내가 가진 위치가 새삼스레 다르게 보일 때가 있다. 때론 실수라는 것을 통해 자라고 커왔다. 부족하나 다른 이들을 가르치면서 깨닫고 조금씩 실력이 쌓여가는 것이다. 진정한 지식은 내가 설명하고 일구어내는 결과물로 알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성장해갔다. 모르면 배우고 익히고 때론 문제 해결도 하면서 왜 그랬는지 찾아보는 과정 속에 내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내게 배우러 온 많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을 모두 만족시키지도 못했어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를 갖게 되고 한 뼘 더 자라게 되지 않았을까. 어느새 나도 중견의 강사가 되었다. 전문가반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이 공부하고 배우고 연습했으니까. 가르친다는 것은 끊임없는 공부일 뿐만 아니라 작은 디테일의 차이기도 하다. 남들은 모르는 작은 차이가 맛과 기술이 되기도 한다. 그걸 얻는다는 것은 별것 아닌, 때론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차별화가 있다. 그걸 알아내는 것도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야말로 쉽지 않다.


다음 주면 마포 수업이 종강을 한다. 6회기로 끊어서 수업을 하니 시작과 동시에 수업이 끝나는 느낌이다. 그만큼 빨리 행되어 좋은 점도 있다. 익숙해져 갈 즈음에 마무리를 하게 되니 아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나마 다행 아닌가. 더 익숙해지기 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괜찮다. 다만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니 내가 더 피곤하기도 하다.


포근한 11월이 가고 있다. 역대급 따뜻함이 가득한 계절이라 겨울이 오고 있는지 알아챌 수 없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쌀쌀한 찬바람이 불 것이다. 아직 길가의 노란 은행잎이 제 빛깔을 뽐내며 빛나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은행잎 비를 보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도 열심히 다니면서 가을 끝자리 깊숙이 들어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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