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림 Nov 29. 2022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람 관계


은행잎 비를 흩뿌리며 저녁 늦게 비가 왔다. 파랗고 찬란하게 빛나는 햇살은 그렇게 어제의 바람과 비가 지나고 나서 주어졌다. 인생도 그렇지 아니한가. 날마다 같은 날씨와 온도가 아니다. 계절도 시간도 날씨처럼 늘 변화를 몰고 오고 간다. 그런 바람 속에 나는 어떤 중심을 가지고 서 있어야 되는 것일까. 어떤 모습의 색상으로 빛나는 것일까.


어제 모임에서 한 엄마의 언행에 마음이 상했다. 평생을 보고 싶고 만나면 기쁘고 궁금하기만 한 사람이 있는 반면 왠지 모르게 불편하고 마음이 언짢은 사람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내 핸드폰에 붙어 있는 사진을 보고선 스치듯 지나가는 말을 했다. 뽀샵 처리를 많이 한 그런 사진은 내가 아니라고. 여권 사진을 찍고서 번들거리는 피부와 머리 색 보정만을 부탁했었다. 그런 내 사진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애써 잊으려 했지만 자꾸 생각이 나고 상기시키게 된다. 더구나 자리를 옮겨서 커피를 주문하는 자리에서도 일하는 직원 대하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내가 오래도록 총무를 했기에 다른 이가 하면 좋겠다 했음에도 그냥 나에게 떠넘기는 듯한 언행을 보였다. 낯을 붉히기 싫어 그냥 마무리했지만 왠지 그녀들이 싫었다. 문득 사람 간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꾸 떠오르며 앙금처럼 가라앉는 시간이었다면 그것은 내가 받은 느낌이 맞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다 설명하진 못하지만 서늘하고 따가운 느낌은 애써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챌 수 있지 않나. 섬세한 마음의 결이 다를 뿐이라 여겼지만 여전히 그녀의 마음엔 내가 어울리지 않았나 보다. 나도 뭔가 모르게 불편함을 숨길 순 없었다. 모임 후 항상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으니까.  모두 하나의 개체로 보았을 땐 흠잡을 데 없고 남들 부러워하는 스펙과 자식들을 가졌지만 그게 그녀를 설명하는 도구일 수는 없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은 스치는 인연과 귀인, 악연이 있다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나 모든 인연이 오래도록 머물다 가진 않는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귀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귀인이라면 자기와 궁합이 맞거나 편한 느낌을 주고 만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더라도 오래된 듯한 평안함과 안정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 설렘과 포근함, 매력을 동시에 가질 수 있는 사람과 모임이어야 하는데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런 인연은 아니었나 보다. 점점 조심스러우나 내 마음을 누르게 되고 그들의 자랑에 뽐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더니 이제는 지고 싶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기분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점점 더 어려운 시기다.


때론 오래도록 만나온 사람이라고 모두 편하지 만은 않다. 코로나로 만남이 뜸한 집사님들도 예전과 같지 않다. 마음 편히 만나 얘기 나누던 시절이 분명 있었지만 나이 스펙트럼이 넓고 자식들의 성장이 다르니 이미 할머니들이 되었다. 나와 결이 다르다 보니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차이가 벌어진다. 다름을 인정하는 게 먼저일 거다. 하나 차이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한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사람을 만나는 게 무슨 이득일까. 일이란 게 사람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통해 이득을 얻을 수도,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만을 볼 수 없더라도 지나가는 시간 속에 우리의 마음이 있다. 현명함이 필요할 때다.

작가의 이전글 은행잎 비를 바라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