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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Dec 19. 2022

사람과 만나는 기본자세


나이 들수록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제해야 할 말이 있단다. 돈 자랑, 남편 자랑, 자식 자랑이다.


부동산이 활황일 때 매번 보기만 하면 자기가 가진 아파트 자랑을 하는 분이 있었다. 양도소득세가 오르자 황급히 팔아버려 더 많은 차익을 얻을 순 없었지만 볼 때마다 부동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관심도 많고 아파트로 많은 돈을 벌었다. 어느 순간 부동산 전반에 관한 식견을 자랑하더니 가진 재산에 대한 뉘앙스부터 재테크 솜씨와 돈 불린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더구나 살뜰히 아내를 챙기는 남편이 어디를 가나 기사 노릇을 하고 마중 나와 준다. 자질구레한 집안일부터 남편 손을 빌렸고 그때마다 착한 남편은 군말 없이 나서서 도와주었다. 늘 그런 모습을 보고 있기에 얼마나 남편에게 잘하는지 알 수 있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두 가지 자랑은 맘껏 할 수 있었지만 자식 자랑만큼은 맘대로 안되었나 보다. 아들만 둘을 두었는데 둘째가 작년에 공기업에 보란 듯이 취직을 했으나 아직 첫째는 취준생이라 맘 졸이며 아들 눈치를 본다고 한다.


세상사 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돈도 가졌고 자상함 넘치는 남편이 부러워할 만 한데 자식까지는 미처 다 가질 수 없었나 보다. 의례 모임에는 언젠가부터 자신의 자랑 거리를 늘어놓기 바쁘다. 주식이 좋을 땐 가진 주식이 얼마나 올랐는지 열변을 토하기도 했고 고환율일 땐 사놓은 달러의 환매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면 결국엔 자식이 잘 된 사람을 제일 부러워하곤 했다. 그게 아마도 인지상정인가. 자기가 가진 것보단 가지지 못한 것에 집착하고 부러워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지인 하나는 자기가 아는 어떤 유명인을 내세우며 그와의 친밀도를 은근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자기가 내세울 게 없기 때문에 타인의 인기에 자기 값어치를 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존감이 낮아 서라 할 수 있다.


돈 자랑, 남편 자랑 중에 최고봉은 자식 자랑이란다. 돈과 남편은 어느 정도 경제 상황과 살아온 날들에 대한 대답일 수 있다. 많은 부분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가질 수 있지만 자식은 다르다. 가장 좋은 것을 자식에게 주고 교육하고 싶은 맘이 큰 한국인에게 자식의 좋은 학교 입학과 취직은 부모의 자랑이 된다. 평생 자녀의 좋은 대학 간판은 엄마의 성적표다. 그러니 앞의 두 자랑은 가진 복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자식은 내 맘대로 안 되는 부분이 커 남들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일 것이다.


자식이 젊을 때 황망하게 사고로 먼저 보낸 분이 있었다. 살면서 자식을 가슴에 먼저 묻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이 들고 보니 노인네 들이 나누는 대화의 80~90%가 자식, 손주 자랑이라고 하더라. 그러니 더 이상 남들 돌잔치며 결혼식엘 가지 않게 되고 소식도 끊게 되더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한글이라도 남보다 먼저 읽거나 달리기라도 빠르고 좋은 학원에 높은 레벨로 들어가게 되면 자랑하느라 침이 마르지 않던가. 젊은 어르신들의 자식 사랑은 손주를 보게 되면 눈먼 할머니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그분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한편 자식과 자신의 삶을 분리하질 못하는 우리의 인생이 노후와 더불어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자녀의 사업 자금으로 재산을 파먹기도 하고 집을 잃기도 하는 걸 보았다. 젊어서 잘 사는 것보단 노후에 평화롭고 안락함이 더 부러운 시기 아니던가. 한편 씁쓸함이 가득한 모임에 자칫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앞세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평소 말의 온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쌀쌀한 날씨만큼 뒷맛이 개운해야 하는데 자칫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에 두 손 모으고 들어가기 전까지 자식 자랑은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어릴 적 기쁨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 나이 들고 성인이 되면서 점점 부모의 근심거리가 되어간다. 성적부터 학교 등 수많은 일들이 유기적으로 엮여 있어서 어떤 상황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랑을 내세우기 전 모든 이의 형편이 같지도 않지만 늘 자랑스러운 자식이라도 언제든 부모의 근심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입바른 소린 하는 게 아니라 했나 보다.


살다 보니 지나친 자랑이 필요 없기도 하더라. 그 말 때문에 불편하고 책임을 느껴 더 곤란할 때도 있기에 우리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특징 중 하나가 지나친 자식 자랑은 독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팔불출이라면서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곤 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지만 자기의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 또한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이를 대하는 기본자세를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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