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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Dec 24. 2022

엄마가 다치셨다.


엄마가 다치셨. 추운 날이라 목욕을 가려 나서는 길이었다. 눈이 다 녹아서 그늘에도 없었고 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낡은 신발을 신었던 탓에 경사로에서 살짝 발목을 겹질렸나 다. 일으켜 세우려 해도 일어나질 못하시니 뭔가 큰일이 단단히 난 줄 알았다. 그 길로 바로 응급실로 갔다. 우리 집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세브란스에 진료를 다니니 모든 기록은 세브란스에 있었다. 아무래도 골절이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간 거였는데 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였다. 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셨고 엑스레이 결과 오른쪽 복숭아뼈 양쪽 2군데 골절이 있다고 했다. 수술을 요하니 CT를 찍어야 했다. 응급실은 만 원이고 대기시간은 기약이 없었다. 난 저녁도 못 먹었는데 자리 비울 형편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환자 속에 전문의는 보기 힘들었고 어린 인턴들이 질문을 하고 왔다 갔다 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겨우 CT를 찍고 의사의 오더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전공의는 교수님께 전화를 하고 톡을 보냈지만 연락이 없다며 어쩌면 아침에 연락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설마 그럴까 싶은 맘이 들었지만 2시간 정도 기다리니 누울 수도, 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몸이 너무 힘들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고령의 환자인 엄마는 내가 힘들까 봐 내 걱정을 하신다. 전공의를 찾아서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되겠냐며 유선상 연락을 바란다고 했다. 진료 포기각서를 쓰고 퇴원 후 오전에 외래로 다시 오는 방법밖에 없다며, 기다려 입원 일자와 수술 일정을 같이 잡고 가시는 게 낫지 않냐고 한다. 진행상황을 기도 했지만 환자가 너무 오래 대기하는 게 안쓰럽다고 했다. 수술 일정을 잡는 것은 이해하지만 기약 없는 불안감이 몰려오고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일정 확인만 남겨놓은 상태로 마냥 대기하는 게 후진적 행정 아니냐 했더니 영국에선 CT 한 번 찍으려면 몇 달을 대기해야 한단다. 응급에 전공의가 있는 병원은 우리나라나 가능하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응급실에 진료의뢰서를 들고 온 한 분은 엄마보다 늦게 병원에 도착했으나 진행이 빨라 마지막 남은 특실을 배정받았다. 우리는 간발의 차로 인해 수술도 미뤄졌고 병실이 없어 입원도 일정에 맞추어 진행한다 했다. CT 상 엄마의 골절 부위도 좋지 않고 4군데나 되는 데다 고령의 환자라 까다로운 수술일 것이다. 수술할 교수가 일정을 조절할 수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더구나 연말이 아니던가. 이때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고 각종 행사를 겪게 되는 때이니 수술 시기 또한 좋지 않다. 그럼에도 날짜가 정해지고 수술 준비를 한다면서 기본검사를 모두 하고 가라고 했다. 검사 하는데 2시간 반이나 걸렸다. 결국 엄마6시경 응급실에 도착해 다음날 새벽 4시 반이나 되어서야 퇴원을 할 수 있었다. 환자가 있다는 것만 해도 몸에 기운이 쪽 빠지는 경험을 한다. 몸을 조금도 못 움직이시니 손과 발이 되어드려야 하고 맘대로 운신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 지경인가.



밤새 안녕이라더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소망이 솟아났다. 이 밤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나마 감사한 것은 고관절이나 자리보전을 하고 있어야 하는 중대질환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고관절이나 엉덩이뼈 근처를 다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엄마는 그렇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미 벌어진 일이라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탓하면 무얼 하겠는가. 그나마 내가 수업이 모두 끝나 개강일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낫다란 생각도 들었다. 다음 주 만나기로 한 계획을 엄마의 수술로 모두 취소했다. 운신을 못하는 엄마에게 붙어있어야 하니 내가 생으로 엄마와 묶이게 되었다. 아직 수업 준비를 못 했는데 이렇게 일이 바삐 돌아가니 '요지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이 들면 화장실 하나 다녀오는 것도 맘대로 못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해 온 장기도 노화를 재촉하니 그동안 잘 사용할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해야 한다. 몸이 아파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매일 사용하는 몸속 내장기관과 맘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는 아프고 보면 그제야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번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신경 쓰게 하고 엄마의 시간에 함께할까. 요즘 따라 섬망 증상이 자주 일어나 아침에 본 사람을 잊고 밤인지 낮인지 엄마의 시간은 달리 간다. 내가 아는 엄마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고 얌전한 사람이다. 무슨 일에서건 혼자의 힘으로 신세 지지 않으려는 강한 분이셨다. 그런 엄마가 한없이 약하고 어린 유약한 존재가 되었다. 한편 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생각도 스쳤다. 전보다 더 엄마를 많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맘이 드나 보다. 내가 엄마의 존재를 이렇게 애달프게 생각할 줄 몰랐다. 누군가는 한번 불러보고 싶은 이름인 '엄마'. 딱 한 번만 만져보고 싶고 불러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래도 난 엄마가 계시지 않나라는 위안들었는데. 치매로 점점 애 같아지는 엄마, 기억의 저편엔 내가 어떤 딸로 남아있을까.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저주라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 엄마를 보내기엔 내 나이도 엄마도 너무 젊다. 노화는 내게도 언젠가 다가올 시간이니 나는 이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리라. 이 밤 엄마가 푹 주무시도록 수면제 한 알을 넣어드렸다. 오늘 밤은 춥고 긴 밤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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