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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an 06. 2023

새해 첫날 나는 병원에 있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 난 병원에 있었다. 엄마의 병간호 때문이었다. 엄마는 집 앞에서 발을 겹질렸을 때 일어나질 못하셨다. 그 길로 응급실로 왔고 우측 발목 골절이었다. 병실이 없어 성탄절까지 대기 후 입원했고 검사 중 심장 질환을 발견했다. 수술 일정이 잡혀있었지만 미뤄졌고 심장 CT 결과 스텐트 삽입술 먼저 받아야 했다. 다음날 조영술을 하러 가선 스텐트 삽입을 할 수 없으니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심장 수술은 큰 수술이라 3개월 동안 다른 수술은 어렵다며 정형외과 수술을 먼저 받고 결과 보면서 일정을 잡자고 했다. 이튿날 곧바로 다리 수술에 들어갔다. 비교적 어려운 수술은 아니나 질환이 발견되어 전신 마취를 부분마취와 척추마취 등으로 변경해 수술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골다공증이 심해서였는지 뼈가 많이 으스러져 유실된 곳도 있다고 했다.



세모에 병원에서 외출, 외박도 마음대로 못했다. 입원 시 엄마와 나는 PCR 검사를 하고 들어와 외부와 접촉할 수 없었고 교대를 하려면 검사 결과가 있어야 했다. 연말 수업이 일찍 마무리 됐고 개강은 둘째 주라 비교적 여유롭게 여겼지만 실상은 현실이 나를 옥죄었다. 최근 잠깐씩 보이던 섬망 증상도 24시간 같이 보내니 엄마의 시간이 보였다. 일상은 포근하고 여유롭고 조용한 엄마지만 문득 드러나는 말투에 '여기가 어딘지', '왜 있는지'도 잊은 채 엄마의 시간은 달리 가고 있었다. 한밤중 혼자 화장실을 가려다 헤매며 넘어지고, 내가 잠들면 가렵다며 반깁스를 혼자 다 풀어버려 기함하게 했다. 나를 깨우지 않으려는 배려였으나 모두 엄마의 섬망이었다. 이러면 어쩌나 싶다가도 이내 미안한지 반나절 동안은 의사 말을 잘 들으며 상태가 호전되곤 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쉽지 않았다.


입안이 깔깔하다며 밥을 못 드시더니 사건을 한 번씩 겪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싹싹 다 드셨다. 엄마가 화장실을 가는 것부터 움직이는 모든 행동이 내겐  힘든 일이었다. 엄마의 시간은 나와 달랐다. 가끔씩 드러나는 실체에 마음 아프다가도 좀 가만히 계시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곤 했다. 어떻게 생리현상을 막을 수 있으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까. 일주일이 넘는 시점에 드는 생각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었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에 와 있는 나. 평소의 내 패턴이나 일정이라면 엄마와의 시간에 이렇게 꼭 붙어 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동생에게 맡기기 수월치 않고 나 말고 올케에게 넘길 수도 없었다. 가족들은 면회도 대기도 안 되는 병원으로 나를 보러 와 소식을 듣고 갔다. 많은 시간이 주어지고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생기면 온통 머릿속은 쓸데없는 상상으로 가득 차 나를 괴롭혔다. 내 속에서 나오는 말도 처음과 달리 거칠어지고 병실의 불편한 환경과 잠도 부족해서 안색이 어두워졌다.



새해를 가벼운 마음으로 맞으며 식구들과 모여 덕담 나누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일상의 아무렇지 않은 모든 일들이 내겐 추억이요 기쁨이었다. 엄마의 질병으로 인해 내 시간은 멈추었고 일상은 차질을 빚었다. 한 사람의 건강이 가족 모두의 손길과 수고를 필요로 했다. 엄마뿐 아니라 전쟁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동생네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쉽지 않은 일상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려는 지금 난 어떤 꿈을 가지고 꾸어야 할까. 끝날 일이지만 아직도 내 길고 어두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뉴스에 터널에서 화재가 발생해 많은 피해와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진입 차단 시설이 작동하지 않아서였다. 소식을 듣고 떠오르는 건 나도 번아웃에 타버린 듯한 착각이었다. 빠져나갈 구멍은 보이지 않고 나의 하루도 쉬이 가지 않았다. 지나간 시간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지만 기억의 저편으로 쓸려버린 내 마음도 그럴까 싶었다.



일상의 아무렇지 않은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맘껏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만져보고 안아 볼 수 있다면, 먹고 싶은 것을 냉장고에서 꺼내 먹으며 해주고 싶은 것을 만들어 주고 나누는, 함께 웃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에 미소 지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었다. 부족한 현실에 부딪힌 많은 일로 인해 맘대로 움직일 수 없다면 그때야말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때다. 우리는 수시로 작은 감사를 잊곤 한다. 숨 쉴 수 있는 것조차 진정한 감사였다. 작은 일상이 온전한 감사로 다가오는 듯했다. 올 한 해는 작은 감사를 불러오고 밝아오는 새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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