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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Feb 18. 2023

나는 봄이 그립다.


날이 많이 따뜻해졌다. 춥지 않다기보단 찬기운이 많이 누그러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구정이 지나면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매서운 기운이 풀리고 얼음이 녹듯 차가운 기운들이 서서히 물러간다. 어른들은 그래서 대문에 커다랗게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고 써 붙였나 보다.


내가 초등학생 땐 기와집 대문은 봄 오기 전 한자로 입춘대길을 써 여덟 팔자 모양이 되게 붙였다. 그래서 봄을 맞이하는 자세를 가다듬고 집안을 정리하며 볼품 있게 양반의 집이란 걸 모양내곤 했다. 그땐 의미를 채 알지 못했지만 요즘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생소할 것이다. 홍천 친가의 동네도 다르지 않았다. 할아버지네 집엔 얼음이 가시기 전에 붙어있곤 했으니 아마도 그게 입춘 무렵이었을 것이다.


이맘때 개울이나 호수의 얼음도 서서히 녹기 시작해 들어가면 갈라지거나 빠지기 쉽다. 지금보다 훨씬 춥고 서릿발 날리는 계절이라 얼음도 두껍게 얼고 시베리아 벌판 마냥 차가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몰고 지나갈 때면 겨울이 언제 갈지 모를 정도로 추운 시기였다. 요즘처럼 가볍고 따뜻한 구스며 오리털 패딩이 있을 리 만무한 시기니 어쨌든 겨울은 춥고 시린 계절이다. 이때가 지나야 조금씩 살을 파고드는 추위가 사그라들고 봄 맞을 준비를 하게 된다.


이때쯤 조심해야 하는 걸 몰랐던 나는 동네 애들이 얼음에 지치며 노는 걸 본 기억에 개울에 들어가 얼음을 밟다가 그만 빠져 버렸다. 한겨울 강원도 산기슭의 칼바람이 어찌나 매서웠던지 제법 깊었던 강가에 홀딱 젖어 살아있는 게 용할 정도였고 고모들과 아재에게 오래도록 놀림을 당했다. 아직도 얼음이 꽝꽝 얼어있는 한 겨울의 냇가를 보지 않는다. 언제고 빠질 위험이 있는 기억 때문에.


언젠가 본 드라마 한 장면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애기씨와 군인 제복 남자의 얼음 위 씬이 기억난다. 매서운 칼바람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서슬 퍼런 대화였는데. 눈부신 푸른 날씨와 하얀 눈 덮인 얼음 위 두 사람을 날 선 바람으로 가르듯 나눠 놓았고 파란 하늘과 찬바람에 서늘한 시림던 장면이었다. 또 영화에선 대갓집 마님이 얼음 위를 걸어가다 빠져 죽는 장면이었다. 얼음은 죽음과 사람의 생을 갈라놓는 장면의 중요한 의미였다. 물론 나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위축되기 충분했다.


봄이 오면 가벼운 시폰의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바람에 날리는 바스락거리는 질감의 겉옷을 입고선 집을 나서야겠다. 가끔은 얇은 원피스를 꺼내 입고 밝은 니트를 두르곤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을 걸어가고 싶다. 쏟아지는 밝은 햇살에 마음보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운동화를 챙겨 신고선 가까운 안산에 들러 파릇파릇 돋아나는 생기 있는 싱그러움을 마주하리라.


그런 살랑거리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봄을 조상들은 얼음이 채 스러지기도 전에 기다리며 봄맞이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토끼 꼬리만큼 길어지는 저녁나절을 보면서 천천히 스미듯이 밀려오는 계절을 준비해야겠다. 그래야 더 기쁜 마음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벌써 봄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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