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아이로 왔다 어린이로 돌아가는
“엄마, 약 안 먹었네? “
“아냐, 먹었는데?”
우리의 실랑이는 매일 이렇게 시작된다. 혼자 사는 엄마는 치매다. 나는 엄마 옆으로 이사 와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학업이 끝나가 좀 이사를 해보려고 하지만 이럴 때 엄마가 아프다. 살면서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지금 내 마음이 힘들다. 여러 이유로 이사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엄마를 떠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나의 현재 일상은 코로나로 멈춤이 되었다. 개강 첫 수업 후 내가 진행하던 수업이 멈추었다. 심지어 다른 센터의 수업은 사라졌다. 나는 지금 집에 있다. 친구들도 전염병 때문에 만나기를 꺼려하게 되고 모임도 미뤄졌다. 하루아침에 모든 일이 없어졌다. 이전에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았는데. 수업도 많았지만 새로운 것도 배우러 다녀야 했고 연습도 해야 했다. 끊임없이 배우고 나를 열심히 다독이며 사는 게 바로 사는 줄 알았다. 늘 나를 채근하느라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동생은 결혼 후 타국의 선교사로 갔다. 그 뒤 엄마는 무척 외로워했다. 나는 사느라, 내 아이들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곁에서 보니 엄마는 날마다 잠을 못 잤다. 아마 그게 시작이었던 게 아닐까. 노인은 혼자라는 외로움으로 시작이 된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나이 들어가는 것을 몰랐다. 잠을 못 자는 것이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그러다 뇌졸중이 왔다. 내가 수업 중이었는데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 할머니가 이상해? “
“어떻게?”
“빨리 병원 가봐야겠어”
그날 엄마는 뇌동맥이 터졌다. 한동안 입원해 있었다. 평소에 잠도 못 자고 약도 잘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골든 타임 내 치료를 받아 회복이 가능했다. 회복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렸다. 그 뒤로 나는 매일 같이 엄마의 약을 챙기고 있다. 오랜 당뇨로 인한 인슐린 주사와 약물 스티커, 그리고 하루 2회의 복용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것도 안 하고 며칠 지나가면 곧 눈에 띄게 변화가 찾아오곤 한다.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다시 약을 잘 챙겨 드린다. 당뇨 관리가 안 됐던 이유로 당뇨의 진행과 합병증이 나를 힘들게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도 어느새 중년의 나이가 되었다. 내 건강을 챙겨야 할 나이다. 그런데 엄마가 아프다. 날마다 집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무섭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별일 없는지를. 그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엄마는 늘 해맑다. 조금씩 기억을 잊어가고 어제 약을 먹었는지, 오늘 먹었는지 헷갈려하며. 내가 오십을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엄마와 가까웠던 시간이 있었나 싶다.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엄마 나이가 되면 나도 엄마같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나이 듦은 서글프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는 엄마는 그렇지 않다. 비록 엄마의 일상이 점점 묻혀 가고 하루를 깜박깜박 잊고 산다고 할지라도 매일의 일상이 있다.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내 일상의 소중함을, 하루하루 내 삶의 시간들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내 시간이 멈추고 일이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나는 하루를 살고 있다. 엄마의 약을 챙기고 병원을 방문하면서 말이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 믿는다. 어떻게 왔는가 보다 생의 마무리가 중요하다. 삶은 아이로 왔다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