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빠, 파파!!!
어떻게든 불러보고 싶었어요. 살면서 그리웠지만 목놓아 울지 않았어요. 제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 서기도 하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렇게 일찍 우리 곁을 떠나셨나요? 하나님은 너무하셨어요.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늘 그리웠고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다가가기가 힘들었어요. 입을 닫고 귀만 열고 다녔어요. 잘못된 것도 아니고 내가 그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늘 가정사를 말하기 어려웠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남들의 시선이 싫었거든요. 내 기억 속의 아빠는 내게 당부하는 말과 아파서 힘들어하던 두 가지만 있네요. 그래서 가족이 아픈 걸 싫어하나 봐요. 차라리 내가 아프고 말지 하고.
내가 태어나고 엄마에게 양산을 선물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더위에 엄마 얼굴이 탈까 봐 걱정되어서가 아닌 내 얼굴이 탈까 봐 양산을 선물했다고. 아빠에게도 첫 딸인 내가 귀했나요? 저도 딸을 키워보니 아빠에게 딸은 사랑스러운 존재인가 봐요. 여덟 살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린 나이예요. 내가 세상에 대해 뭘 알았을까요? 우리 집에 TV가 들어오던 날이 생각납니다. 빌딩 탑 층에 살 때 아래층에 자꾸 가서 텔레비전을 보니까 학교 가면 사준다고 약속했었지요? 내가 입학을 했는데도 안 사주셔서 언제 사줄 거냐고 했는데 다른 집보다 큰 문짝이 달린 TV를 들여놓던 게 생각나요. 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주일 저녁에 '로보트 태권브이'를 볼 수도 있고 만화영화를 맘껏 볼 수 있어서 좋았거든요. 양쪽 문을 열고 볼 수 있는 가구 같은 텔레비전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해요.
이대 앞에 이사 가기로 했던 골목 한옥 집이 생각나요. 우리 집이라고 해서 지나갈 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보곤 했는데, 결국엔 병원비로 사용된 걸 알았어요. 그렇게 아프면 미리 치료를 하지, 하긴 그땐 의학이 발전하지 않아서 지금처럼 치료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간염이라는 병이 과로로 오는 병이라던데 간이 그렇게 되도록 얼마나 일을 했나요? 어렸을 때 이별이 뭔지 죽음이 뭔지 모를 때 헤어진 아빠. 그동안 엄마 혼자서 세상에 남겨진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고 속 끓이면서 지낸 수 없는 밤이 있었어요. 왜 그렇게 어린 우리를 두고 엄마가 교회에 가는지 이해 못 했거든요. 밤마다 무섭고 힘들어서. 자다가 누구라도 들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 무서움이 나를 괴롭혔어요. 그래도 엄마 보고 교회 가지 말라고 하지는 못했어요.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가 너무 안돼 보여서. 젊은 엄마는 너무 힘들었나 봐요. 아빠의 부탁이 없었으면 엄마는 우리를 버렸을까요? 밤마다 힘들어서 울면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나만 힘든 줄 알았어요. 엄마는 어른이니까, 동생은 남자니까 괜찮은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각자 삶이 힘들고 가진 상처가 있더라고요. 같이 이겨내 보자 하고 똘똘 뭉쳐서 살았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봐요. 엄마도 처음 겪는 어려움이라 그런 생각도 못 했겠지요. 동생도 왜 나만 아버지가 없어서 사랑받고 살지 못했을까 하는 말을 하더라고요. 지금 와서야 듣게 된 그 말속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였던 거 같아요. 한 번도 친구들에게 아버지가 안 계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요. 남들의 시선과 위로라고 건네는 말속에서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런 말들이 듣기 싫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내 아이들에게 만은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세히 살펴서 아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려 노력했어요. 아시겠지만 뿌듯하시지요?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잘 자랐어요. 나 잘한 거 같지 않아요? 한 번도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아빠의 칭찬이 그리웠네요. 남편은 착해서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도 않고 성품도 좋아요. 살면서 속이 깊은 것 같아요. 좋아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써보지 못한 편지를 써봐요. 어버이날이 와도 한 장만 써도 됐기에 처음이네요. 아빠의 사랑이 늘 그리웠어요. 나를 안아주고 이해해 주고 늘 내 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고 살았어요. 나만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많이 생각나네요. 원망은 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만 너무 일찍 떠나셔서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그리움과 추억이 없는 게 늘 불만이었거든요. 추억이라도 있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서요.
아빠! 맘껏 불러보고 싶어요.
2022년 2월 어느 날 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