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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아픈 겁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by 최림



루이소체 치매. 이름도 생소한 병명으로 엄마는 6개월에 한 번씩 의사를 보고 진료를 한다. 간간이 비싼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면서. 오늘은 2주 전 인지검사랑 뇌파검사의 결과를 같이 보는 날이다. 의사는 엄마의 상태가 특정 뇌파에서 붉게 반응한다고 했다. 그리고 섬망(주의력 상실, 의식의 변동, 명확한 사고력 상실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섬망은 뇌의 질환이지만 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며, 약물 중단 시 발작이 일어날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한단다. 내가 종일 같이 생활할 수 없기에 요양사를 두고 아침저녁 약물을 잘 투여해야 해서 4개월 뒤에나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건보공단에 엄마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이런 일이 가까이 와 버렸다. 언젠가 올 것이라 생각하긴 했지만 엄마가 가끔 생각의 변화를 보이기도 하고 의식이 현재와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한다. 복합적인 증상이 동반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가끔 그날 먹어야 할 약이나 주사, 스티커 등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나는 처음부터 지친다. 똑같은 일을 매일 같이 반복하고 우기는 일이 계속되니까. 살면서 내가 겪어야 할 많은 일들 중에 나는 지금 길고 지루한 터널을 지나는 중이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나는 견디기로 했기에 지나갈 수 있으리라 여기고 있을 뿐, 쉬운 건 아니다.



얼마 전 엄마는 갖고 있던 건물을 팔았다. 어떻게 팔았는지 얼마에 거래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당분간 먹고살기에 힘들지 않을 만큼의 액수겠지. 내게 심한 말을 해서 한동안 관계가 힘들기도 했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엄마의 시간은 지나가고 근 한 달간 약을 먹지 않아서 한동안 고혈당이 오기도 했다. 물론 주사도 맞지 않았고. 약이 쌓이고 먹는 것을 잊고서 먹었다 여기는 생활이 반복이 되었다. 내 마음이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힘듦으로 치닫지만 계속 얼굴 맞대고 볼 자신이 없었다. 핑계라면 핑계일 테지만 상실감이 더 컸다고 할까.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은 편할 수 없다.



엄마는 아들이 먼저인 옛사람이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엄마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교육하는 것 어느 하나 쉽지 않았을 테지. 나도 이 나이가 돼보니 알겠다. 어느 한 곳 말할 데 없고 의지할 데 없는 처지를 어린 우리 남매를 보면서 얼마나 눈물 흘리고 힘들어했을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 준 엄마에겐 우리가 훈장이고 내 자식들이 표창장이다. 나도 견디는 시간이었는데 엄마는 알까? 누군들 쉬웠을까? 서로를 부둥켜안고 살아갔지만 각자의 마음에 들어가 치유를 하고 보듬는 시간은 없었던 듯하다. 나 또한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줄 알았다. 인생이 쉽지만 않았는데. 돌이켜보면 실타래처럼 잘 풀려가기만 한건 아니지만 비교적 큰 장애물은 없었던 것 같다.



"전 괜찮은 것 같은데요?"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지금 뇌가 아픈 겁니다."



그래, 엄마는 뇌가 아픈 거란다. 아픈 게 맞지, 뇌가. 의사 말처럼 그렇게 여기면 내 마음이 조금 나아지려나? 인정하는 마음이 먼저다. 그런 바탕 위에 다시 계획을 세우고 어떻게 치료할지 진행을 하는 게 맞다. 여러 치매 중 비교적 고운 치매라 여겼는데 쉬운 건 없다.



병원을 갔다 오면서 엄마가 밥을 산단다. 메밀을 먹으러 간다. 원래 쌈밥 집이지만 메밀도 잘하니까 곱빼기로 두 개 시켰다. 그동안 내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기에 엄마에게 일부를 덜어내고 먹었다. 그것도 들어갔다고 속에서 부딪긴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었다. 오랜만에 밖에서 음식을 먹고 마트에 가서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한 아름 사 온다.



밥 한 끼에 그간 쌓였던 허물이 스르르 풀어졌다. 오늘 상태가 좋고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내게 짐이 되지 않겠다 했지만 지금 엄마는 나의 앞을 막고 있다. 그것도 23년째. 나는 한 곳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얼마나 지겨웠는지 모른다.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올라오는 그 길이 나는 싫다. 단지 교통이 편하다는 점 딱 한 가지. 이곳에 오래 산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었다. 엄마가 살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이곳을 벗어났겠지. 여러 집을 보러 다니고 계획을 했음에도 나는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 다 성인이 되어서 내 곁을 떠나보내고 나니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엄마를 보느라 내 자식들에게 소홀했음이다. 아침마다 하나뿐인 화장실로 인해 힘들었으며 나처럼 똑같이 언덕을 오르내리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내 자식들에게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길렀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로 돌아왔을까?



내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함이 없었다. 늘 불평불만을 가지고 남과 비교하며 남이 가진 것을 탐내며 살았다. 그런데 지천명이 된 지금에 보니 나는 가진 것만 빼곤 나머진 그래도 살만했다. 남편이나 자식이 내게 힘들게 한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된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길을 이끌지 않아도 잘 헤쳐나가고 있다. 엄마가 지금 내게 남았을 뿐. 그래도 살만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아직 나의 생이 다한 것도 아닌데 내게 있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며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지금부터 내 손으로 얻으면 될 것이다. 하나씩.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기에 뭔지 모를 자신감이 있다고 할까.



작은 행복이라도 내가 만족하고 나를 알며 그 바탕에 삶을 그려나가면 된다. 여태껏 나는 감사함도, 내가 가진 것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나도 한발 자국씩 디뎌 보리라. 엄마는 노쇠해서 점점 힘들어 간다. 내가 아는 엄마의 남은 시간을 마무리를 잘해주어야지.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긴다. 늘 좋을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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