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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r 11. 2023

봄맞이를 합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집을 나섰다. 비교적 가벼운 옷차림이었으나 몇 걸음 걷자 날이 너무 푹하다는 걸 실감했다. 길거리엔 젊은이들이 가벼운 옷차림과 절반 정도는 마스크 없는 모습으로 활보하고 다니니 봄이 온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날만 따뜻해진 게 아니었다.


봄맞이를 하는 첫 번째 준비는 냉장고를 정리하고 먹거리를 준비하는 거였다. 냉장고 정리를 했다. 전엔 1개월에 1회씩 꼭 했지만 지금은 음식을 많이 채우지도 않고 가볍게 살림을 한다지만 여전히 냉장고는 꽉 차 있다. 난 그럴 때마다 냉장고를 덜어낸다. 부족한 반찬 통의 개수만큼 냉장고에 먹지 않는 음식들이 늘어간다는 뜻일 테니. 냉장고비우고 새로운 음식을 마련한다. 야채며 사다 놓고 먹지 않았던 양배추, 두부 등이 나왔다. 과일은 그나마 매일같이 챙겨 먹으니 낫지만 나머진 덜먹게 돼서인지 정리할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냉장고를 청소하고 주말이라 반찬 몇 개를 만들었다. 시금치나물이며 콩나물무침, 각종 야채를 썰어 넣은 잡채, 연근조림, 돼지 두루치기를 했다. 묵은 지를 한 개 꺼내서 목살과 육수를 듬뿍 넣고 푹 끓여 김치찜도 했다. 주말에 아이들이 온다는 소식도 없고 그나마 남편은 나무 심는다고 시골엘 갔다. 이런 날 난 혼자서 사부작 음식을 만든다.


혼자서 끼니를 챙겨 먹을 땐 나를 위해 고기를 굽지 않게 된다. 나들이 계획도 없는데 김밥 재료도 모두 손질해 놓았다. 누굴 위한 준비였을까. 오지 않는, 밥상을 같이 할 식구도 없는 저녁 난 음식을 만든다. 나를 위한 음식도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음식을 해낸다. 물론 내가 다 먹지도 못하고 엄마께 이것저것 챙겨드리면 될 일이다. 뭔지 모를 허전함이었을까.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이었을까.


봄이 온다는 것은 찬란한 시간이 주어진다는 건데 내 마음은 여전히 바람이 분다. 봄맞이의 두 번째는 머리를 손질하는 거다. 미용실에 들렀다. 살짝 손질해 가볍게 만들었더니 그나마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셨다. 머리뿐 아니라 마음이란 게 잠깐씩 들여다보고 슬금슬금 터치를 필요로 하나보다. 푸른 새싹들이 돋아나기 전 벌써 마음에 이끼가 생성된 거 같았다. 가벼운 구두 하나 사러 가고 싶어졌다. 벌써 봄이 문 앞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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