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림 Mar 07. 2023

전쟁 속에 피어난 평화로움

명화리뷰, 장욱진의 <나룻배>


장욱진 화가(1918~1990)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와 함께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이다. 서울대 교수를 역임하다 덕소로 내려가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현재 경기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기리고 있다. 한때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신사실파'를 결성해 특유의 토속적인 정서를 그렸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닌 간결하고 근본적인 본질을 추구했다. 실제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특별전 : 한국미술 명작"에서였다.


1939년 판지에 '소녀'를 그렸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작품이다. 실제로 그는 이 그림을 전쟁통에 지니고 다닐 만큼 아꼈다고 한다. 고향마을 산지기 딸을 모델로 그렸는데 맨발의 소녀를 투박한 필치로 그려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30 X 14cm)에 유화로 그려 넣은 그림은 그 시절 어려웠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맨발에 댕기머리 모습의 소녀를 통해 고향에서의 추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전쟁으로 물감이나 종이조차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이 소녀 그림 뒤편에 그린 그림이 '나룻배'다. 6.25 전쟁으로 부산 피난을 갔다 오면서 제작되었다. 작은 나룻배에 소, 가방 멘 소년, 닭을 안고 있는 여인,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인, 자전거를 붙들고 있는 소년, 뱃사공이 나란히 서있다. 다시 보니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엔 표정과 눈코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화려하지 않으나 원색에 가까운 색, 특별하지 않은 간결한 표현이지만 뭔지 모르게 묘한 편안함이 있다. 마치 어린이가 그려놓은 듯한 그림으로 세밀한 터치 대신 투박함과 거친 표현이 진솔한 모양새다.


그림은 코너를 돌자마자 있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라 얼핏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그림이었다. 문득 교과서에서나 봄 직한 유명한 그림 중 이 그림이 떠오른 것은 아마도 그의 간절한 필체와 색감 때문일 것이다. 포근함과 더불어 자연을 그릴 때 심플하고 깊은 단순함이 묻어 있어서다. 나룻배는 교통수단으로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사실 이런 작은 나룻배를 타고 간다는 것은 모두 앉아서 자리 차지하고 보낼 법도 한데 각자 짐을 이고 지고 붙들고 서있는 고단함을 보여준다. 그 당시 어머니들이 길을 나설 때 머리에 짐을 이고 두 팔로 자연스럽게 활보하던 모습일 테니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룻배 속의 자전거를 꼭 쥐고 있는 소년이 보인다. 소도 한배를 타고 있다. 등에 가방을 멘 소년, 닭을 안고 가는 여인 등을 넣은 것은 시대상을 통해 고단한 피난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룻배를 열심히 노 저어 가는 뱃사공만이 여유롭다. 한 편의 이야기를 엮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함을 담고 있다. 한참을 들여다봐야 알 수 있는 그림이다.


이 나룻배는 장욱진의 고향마을에서 조치원까지 마을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한다. 장욱진은 이런 나루터의 풍경을 보고 자랐으니 이 그림도 고향에 대한 추억이다. 단순한 선과 색으로 간결하게 그렸기에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그가 즐겨 그리는 것 중 아이, 나무, 새, 집 등 소박한 자연을 소재로 일상을 풀어냈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 그의 특징이다. 전쟁 중 그린 것치곤 평화로움이 담겨 있어 알고 나면 놀라게 되는 그림이다. 도대체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린아이 같이 순수한 정신이었을까. 


평생을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할 당시 신여성 나혜석을 만나고였다. 나혜석이 장욱진의 그림을 보고 자신보다 훌륭하다고 했을 때 화가가 되겠다 결심하고 유학을 떠났다. 한국적인 간결함과 해학,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들은 양주 미술관에 가면 시기별로 감상할 수 있다. 돈에 그림을 팔지 않고 작품에만 매달려 자신의 독특함을 살린 그림들이 많다. 이건희 특별전에서도 한참을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던 그림이었다. 평화로운 오후 풍경처럼 포근함이 느껴져 기념품점에서 살까 말까 고민한 매력 있는 작품으로 처음 액자에 넣어 보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3월 꽃이 한창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