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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r 23. 2023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이십 도가 넘나드는 날씨가 되니 개나리며 목련이 얼굴을 내민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봄을 알리고 있다. 수강생이 꽃놀이 유혹에 빠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왔다고 해서 웃었다. 요즘 같은 때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남쪽엔 노란 산수유와 매화가 지천으로 피고 졌다 한다. 서울 양지바른 곳은 이제 하나 둘 꽃들이 피어난다. 예년보다 이른 벚꽃의 개화시기를 알리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아한 화사함을 드러내고 사람의 발길을 부를 것이다.


자연은 온몸을 다해 피어나길 반복하면서 사람에게 감동과 사랑을 주고 있다. 나이와 성별이 달라도 꽃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순수해 지나보다. 퇴직한 어느 선생님은 어릴 적 친구들과 전국의 명산을 다니고 꽃을 보는 즐거움을 글로 올렸다. 나이 든 남성이라 하더라도 꽃과 계절, 자연을 향한 생명력과 기쁜 감정은 누구나 갖는 것이구나 느낀다. 하물며 봄바람에 살랑이는 마음가짐이 치맛자락 나풀거리듯 흔들리는 우리야 뭐가 다를까. 더하면 더했지 설레고 뛰는 마음이야 말해 무엇이겠는가.


한낮의 기온이 오르니 낮에 잠깐 외출하는 분들은 벌써 반팔을 입고 온다. 날씨는 옷만 가볍게 만든 게 아니었다. 봄은 점을 찍듯이 사라져 가고 여름이 오는 것 같다며 다들 한 마디씩 해댄다. 3월이면 봄을 시샘하듯 꽃샘추위가 오고 가야 하는데 요즘엔 추위보단 열기가 더했다고 할까. 기대하는 포근함은 다가왔지만 당황하게 되는 날씨라 할만하다. 살짝 왔다가는 날씨며 시절이라 그런지 더욱 귀하고 시간이 아깝다.


학창 시절 짙은 자목련과 하얀 목련이 피고 지는 것을 보면서 봄을 느꼈다. 필 때는 화려하고 고고한 아름다움이지만 질 때는 서럽게 슬픈 자태로 떨어지고 마는 목련이 좋았다. 학교를 오고 가면서 유독 키 큰 목련이 얼굴을 내밀고 있으면 한 번쯤 눈길을 주고받았다. 잔잔하게 피어나는 작은 꽃망울들도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지 끝에 달린 커다란 봉우리에 눈길이 가는 걸 막을 순 없었다.


하얀 자태를 드러내며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목련을 보고 있자면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것만 같다. 온 산에 연두 빛깔의 푸르름이 물들기 전 잠깐 가질 수 있는 어린잎들의 향연이 몰려올 때면 난 이 계절을 사랑하곤 한다. 어찌 마음에 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봄볕에 조는 병아리처럼 여린 마음을 드러내고선 조용히 한 걸음씩 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진다.


이 계절 더 많이 봄을 가슴에 담고 눈에 새기며 느끼고 싶다. 노란 황사바람처럼 좋지 않은 기운은 사라지고 화사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가득한 그런 시간이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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