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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r 27. 2023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반 유일한 청일점인 분이 한주 못 온다며 알려왔다. 저학년인 자녀가 아빠가 만들어 오는 것을 좋아한다며 만든 빵과 샌드위치를 들고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그 뒤 몇 주가 지나도록 수업에 오시지 않아 모두 궁금해했다. 혹 좋은 소식이 아닐까, 아직 젊으시니 새로운 일이라도 시작한 건 아닐지 추측했다. 근 한 달 넘게 수업에 보이지 않아서 조원들이 '그럴 분이 아닌데' 하며 커피도 같이 배우고 계셨는데 빵이 훨씬 재미있다는 말을 했다 한다.


얼마 전 수업 시간이 끝나갈 때 담당자로부터 문자가 왔다. 수강생 부인이 센터로 찾아왔다면서 교통사고로 많이 다치셨다는 소식과 전화번호를 주고 가시면서 수업에 더 이상 못 오신다고 전했다. 마무리를 하고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목소리가 힘들게 수척했고 어떠시냐 물었더니 많이 좋아졌다고 하신다. 듣기엔 어눌한 발음일 정도로 애쓰는 목소리였는데 괜찮냐는 말을 건네기 어려웠다. 어느 병원에 계시냐 여쭤봤지만 어렵게 하는 말을 난 알아듣지도 못했다. 빠른 완쾌를 기도드리겠다고 했다. 그때 그분의 한마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시간이 될 수도 있구나! 자녀도 어리고 젊고 점잖으신 성향의 수강생분이 그 상황에서도 해 주신 말이 자꾸 마음에 맴돌았다. 한 주 뒤 담당자에게 들은 말은 가까운 병원에 입원해 있고 물어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다치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날 만든 빵과 쿠키를 잘 포장해서 들러야겠다 생각했다. 수업 후 혹시나 대형병원이라 면회가 안될까 봐 연락을 드렸다. 어렵게 통화가 되었는데 병원을 옮겼다고 하시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난 해준 게 없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전보다 더 힘들게 전화를 받으셔서 긴 통화를 할 수 없어 마음 아팠다.


사람이 하루 앞일도 모르는 거다. 가족여행 갔다 돌아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고 들었다. 큰 사고로 그 짧은 순간에도 가족을 보호하려 혼자만 크게 다치신 거 같았다. 다른 가족의 안전은 별일 없는 걸로 봐서 꽤 심각한 부상이지 않을까 염려가 들었지만 꼭 완쾌하셔서 다시 뵙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귀해서 다시 뵐 수도 있으니까. 일상으로의 빠른 회복을 바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어린 자녀가 얼마나 눈에 밟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진실한 한마디의 힘은 정말 세다. 난 누군가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순간 모든 일에 더 최선을 다해야겠구나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내게 좋은 기억을 주시려 했는지도 모른다. 사정을 알리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매일 새로운 분들을 만나게 되는 건 늘 설레지만 꽤 괜찮은 인연이 나타나기도 한다. 난 얼마나 다른 이들이게 정성과 마음을 다했나 돌아보게 된다.


진심을 담아 건네는 한마디에는 살아있는 꿈틀거림이 있다. 생명력이 살아 숨 쉬며 싹을 틔우고 자라게 된다. 어떤 씨앗을 심을지 내 마음이 결정하고 키우게 될 테니 어쩌면 서로에게 전하는 한마디는 인격이 오고 가는 게 아닐까.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말속에 반짝이는 희망을 불어넣고 싶어졌다. 고운 성정에 갑자기 닥친 어려움이라도 이겨내시기를 응원하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신께 기도드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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