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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r 30. 2023

봄은 그린움 인가보다.

봄소풍 즈음에 떠오르는


때는 국민학교(초등) 1학년이었다. 요즘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내용이니 대현동 학교부터 시청 옆 덕수궁까지 걸어가는 소풍이었다. 선생님이 60여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을 통솔하고 걸어서 도보로 소풍을 갔다. 버스를 대절해야만 하고 엄마들이 쭉 마중 나와서 손 흔들고 하는 요즘 풍경은 아니었으니 아마도 우린 지금처럼 중구난방의 어린이였지만 그래도 선생님과 어른 말을 잘 듣는 축에 속했나 보다. 건널목이 나오면 손 흔들고 길을 건너며 찬찬히 언덕을 넘고 아현동과 충정로를 지나 덕수궁 돌담길을 넘어가는 소풍길이었다.


정동길이 나오자 줄 맞춰 들어간 덕수궁엔 이미 엄마, 할머니들과 가족이 모두 총출동해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그땐 일재의 잔재가 남아있어 궁 안에 동물원이 있고 곰이며 호랑이 등이 있었다. 동물원을 보고선 지금의 현대미술관 자리와 분수대, 아라사(러시아) 공사관을 보면서 그림도 그리고 친구들과 웃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구경하던 게 생각난다. 선생님들이 60여 명이 다 된 인원을 데리고 걸어서 소풍을 간 것도 이상하지만 처음 가보는 소풍이 좋기만 했다.


소풍은 가족 잔치인 것 마냥 어른들의 축제였고 엄마는 김밥과 오징어, 맛동산, 빠다코코넛 등 엄마 취향의 과자를 잔뜩 사주었다. 운동회도 아니고 소풍이었는데, 그것도 걸어서 고궁을 들러오는 코스였지만 지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일 테다. 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세상 안 가본 데 없는 얼굴을 하고선 기세 등등 하게 가는 놀이동산이 다가 아니었다. 가까운 데라도 소풍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친구들과 떠나는, 마치 오늘은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허락된 하루였으니까. 전날 밤새 설레며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기도 했다.


노란 개나리가 만발해 있고 춥지 않지만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는 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소풍 간다고 하니 노란 바바리 스타일의 겉옷을 사주셨다. 마치 개나리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선 잘 갔다 오라는 내용이었을 거다. 오랜 세월 후 엄마의 한마디에 머리가 띵 해졌다. 그때 입었던 탁한 노랑은 내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 얼굴이 황달 들린 것 마냥 들떠 있었다고. 그 뒤로 그런 색 옷을 피해서 사주셨단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때 사진을 들춰보니 어쩜 그렇게 촌스럽고 맘껏 뽐 내 입던 원피스며 스타킹이 재킷에 어울리지 않았다. 물론 센스 있고 멋쟁이가 없던 시절도 아니었지만 나름 엄마는 내게 봄을 맞아 꼬까옷을 선물한 거였다.


사방에 개나리가 필 때면 엄마들이 미리와 기다리고 있던 소풍이 생각난다. 우리 엄마는 친구들처럼 올 수도 없어 난 늘 그런 친구들 사이에 끼여 김밥을 먹곤 했다. 하나 열심히 엄마가 싸주시던 김밥이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늘 양갱이며 엄마의 취향을 저격할 과자들이 매년 똑같이 등장하곤 했으니까. 어째서 엄마의 과자 취향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늘 맛동산이며 빠다코코넛, 오징어볼을 싸주셨으니 아직도 엄마는 이런 과자를 좋아하기 때문일 거다. 그때 늘 먹거리가 풍성하고 내 곁에 늘 과자가 쥐어져 있던 때가 아니었기에 더 귀했을지도 모른다. 며칠을 아껴먹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으면 학교 통신문엔 어디로 떠난다는 현장학습 통신문이 배달될 기세다. 요즘엔 원하는 곳을 여럿이 나눠서 소풍을 간단다. 세상이 그새 많이도 변했다. 그러나 그때 친구들과 멀리 돌고 돌아 걸어갈지언정 함께 했던 추억이며 시절이 있었다. 머리가 크고 자라면서 버스를 타고 강원도로 충청도로 나갔지만 내 첫 소풍의 기억은 그때였다. 놀이동산이 있을 리 만무하고 어딜 가나 차로 데려다줄 가족이 늘 대기하는 것도 아닌 그때의 소풍은 시골 사는 이들에겐 가까운 언덕이며 유명한 지역의 다듬어진 곳으로의 소풍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의 내 기억보단 더 낫거나 할 일도 아니었던 셈이다.


누군가와 함께 했고 어떤 시간을 거쳐왔는지 그리고 그때의 풍경이 우리에겐 추억이요 그리움이겠다. 여기저기 봄빛이 가득한 이맘때 나들이 겸 엄마와 소풍이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 답답함이 가시도록 엄마의 마음을 한번 보듬어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봄은 그리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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