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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y 09. 2023

아들과 산행 데이트


오랜만에 아들과 안산에 올랐다. 문득 산에 따라간다고 해서 좋았다. 아들이 고3 시절 숨이 막혀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주말 아이를 학교 보내고 천천히 안산에 올랐었다. 2이라 추운 날씨였지만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고 날씨도 꽤 상쾌했었다. 하지만 난 살이 쪄 있었고 그동안 운동을 하지 않아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중턱인 팔각정까지 오르고 무리하지 않고 내려왔다. 한 주 뒤 다시 올랐더니 전 주보다 한결 가벼워진 몸짓으로 오를 수 있었고 봉수대 꼭대기까지 갈 수 있었다. 3주가 되자 비로소 오를만했으니 한 주 한 주가 다른 상태를 알게 했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서 걷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자연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푸르고 맑은 하늘과 공기, 파릇한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 산에 가는 게 좋았다.


가끔 아들과 산에 가면 좋은 이유가 젊음을 볼 수 있어서, 맘껏 하지 못했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끔은 내 이야기도 하면서 운동도 하고 기분도 좋게 유지할 수 있어서 등산 데이트는 강추한다. 물도 나눠마시면서 땀도 좀 흘리고 햇살도 받으며 세로토닌도 많이 생성되게 하는 이 시간이 즐겁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건강하고 날씬하다. 물론 일부러 살을 빼고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지만 규칙적으로 산에 다니면서 좋은 기운을 받고 자연의 내음을 맡으니 점점 어려지는 거 같다. 그때처럼 불안과 아이의 힘듦을 안아줄 여유가 있어서다. 고3이라면 살면서 가장 커다란 산을 하나 넘어가고 있는 중이지 않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긴장과 매일의 스트레스에 절어 살던 아들을 보는 내 마음도 쉽지만 않았는데. 어느새 여유롭게 아들과 웃고 떠들며 슬슬 힘들이지 않게 산을 오르고 있다. 전과 같이 땀을 많이 흘리지도 않고 긴장도 하지 않는 가벼운 산책길 정도니 숨을 몰아쉬지도 않게 된다.


지난주에 이어 연달아 오니 그동안 녹음이 짙어지고 5월의 푸르름이 더해간다. 자연은 늘 이렇게 내가 돌아다니던 모퉁이마다 다른 빛깔과 향기로 나를 맞이해 준다. 전보다 키가 크고 많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워내고는 팔 벌려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어내고 있다. 이틀간 내린 비 때문인지 하늘은 맑고 공기도 상쾌하다. 시야를 가리지 않고 멀리 볼 수 있는 전망이 주어지니 일 년 중 얼마 볼 수 없는 기회다. 롯데타워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남산이 가까이 서 있으며 멀지 않은 빌딩 숲 사이로 드러나는 경복궁과 그 너머의 하늘까지 분간되는 날씨다. 뿌옇게 시야가 흐려지는 날씨가 아니어서 정말 좋았다. 서울 하늘의 공기가 맑다는 생각이 드는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가까이서 겨우 30여 분만 오르면 되는 위치에 있지만 사는 게 뭔지 여길 한 번 와보지도 못하고 보낸 시간이 많았다. 자연의 변화도 알아봐 달라 내게 매달리지 않지만 미쳐 가져서 느끼고 누려야 할 수많은 것들 중 하나 아니던가. 게으름과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시간이라면 이제는 좀 더 내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졌다. 건강을 위해서라기보다 걷는 시간이야말로 생각을 정리하고 복잡해졌던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이만한 게 없다. 더불어 주어지는 혜택이라면 자연을 눈으로 보면서 오감으로 즐길 수 있다는 거겠지.


몸이 가벼워져서 힘들이지 않고 오르내리니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잎들이 펄럭인다. 시원한 한줄기 햇살처럼 벌레도 없고 덥지도 않은 이때가 가장 아름답다. 시간이 흐르는 걸 잡을 수 없겠지만 지금의 시간을 맘껏 느끼며 즐기고 싶어졌다. 사는 게 별 건가.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는 지. 아들과의 산행 데이트는 좋다. 언젠가 젊은 커플이 같이 산에 오르는 것을 보니 좋아 보였다며 너도 건강하고 좋은 데이트 많이 하라며 웃었다. 그 시기가 오기 전 아직은 내 차지려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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