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의 가다실 주사를 위해 병원 예약 시간에 만났다. 한국에 들어와 건강보험에서 가다실 처방 대상이니 맞으라고 여러 번 연락을 받았다. 사실 그 나이 때 여학생들은 고등학생이라 직접 맞지 않고 넘기는 경우가 많고 예민한 입시를 목전에 두고 있어서 보통은 나중으로 미루거나 돈을 주고 맞게 하는 게 일반적이다. 난 국가접종을 알지도 못해 미루기만 하다 맞히지 않았는데 첫 경험을 치르기 전 접종을 하는 게 좋으며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남녀 모두 처방받아 3회 접종하는 것이다. 어쨌든 조카는 1회 접종을 한 상태고 동생네 부부의 부탁으로 2,3회 접종은 내 몫이 되었다.
앉아서 기다리니 처음보다 덜 아팠다며 웃는다. 2주 전 접종일이었으나 시험 기간 컨디션이 좋지 않아 1~2주 정도 미룰 수 있다 해서 오늘 약속을 했었다. 지난번 내 생일 때는 체했는지 오지 못해 마침 오늘 데이트 약속도 같이했다. 점심도 부실하게 먹었는지 별말 없어서 근처 닭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매운 것을 못 먹는지라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의 칼국수를 좋아했다. 커피를 사겠다고 해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생일 케이크라며 마스카포네 치즈케이크 한 조각과 커피 두 잔을 사 갖고 왔다. 마음 씀씀이가 예쁘다.
서툰 한국어로 알아듣지만 선교사 부모를 따라다니며 보통 어른들을 같이 만나니 그래도 언어의 이해 폭이 넓은가 보다. 처음 3주 동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면서 벌써 다른 친구들은 학습이 어려워 영어권 국가 대학으로 다시 입학을 한다며 떠난 친구도 있단다. 부모가 모두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 어려움을 토로하자 수업 전 책 한 번 그냥 읽고 가라고 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자 이해하고 알아듣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웃는다. 리포트 작성의 어려움과 다른 친구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작은 어려움들이 있을 거라 했다. 과 조교를 찾아가서 도움받을 수도 있고 도우미가 같은 과 선배라면 미리 준비해야 할 것들을 물어보라 했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겠냐고.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아직은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17세인 조카를 보니 아직 아기 같다. 덩치만 크고 예쁜 젊음이 있지만 부모의 손길에서 스스로 자립해야 하는 지금이 막막할 것이다. 유학이라 부모는 우크라이나에 있으니 마음 또한 편치 않을 텐데. 부모가 떠나기 전 각자 꿋꿋하게 잘 살아내자 했다. 자기의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온 힘을 다해 피어나는 중이다. 그렇게 난 또 하나의 꽃을 보고 있다. 내 조카지만 엄마, 아빠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 것이 헛되지 않았으니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당당하게 자기의 자리를 다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몇 년 전 딸이 대학 입학을 했을 때 서울을 제외한 가까운 지역의 국립대가 되었다. 안전 지원 한 곳만 연락이 와서 학교를 갔지만 마음 붙이지 못하고 힘들어 울면서 재수를 말할 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하도록 독려했다. 한 학기를 보내더니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성적이 상위권이 나왔다. 그때부터 공부에 재미를 붙여가며 매번 성적 장학금을 받아왔고 한눈팔 줄 모르는 성정에 연구실에서조차 많은 인정을 받고 있는 듯했다.
사람의 일은 모르는 거다. 자기의 자리에서 잘 피어나는 게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인지. 딸의 경우를 보면서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게 뭔지 어렴풋이 깨달아 간다. 그때 딸의 나이가 어린 18세였다. 재수를 하고 들어온 동기보다, 친구들보다 생일이 늦어서였는지 내 눈엔 그저 어리고 유약하고 아기 같기만 한 어린애였다. 그런 어린애가 이제는 나도 20대 중반이라면서 대학원에서 남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모두 지나온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조카를 보면서 내 마음이 그때 딸을 대하는 마음과 같다. 혼자서 얼마나 힘들이며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이 쉽지 않고 낯선 것 투성 일 테니 어느 것 하나 그냥 이뤄지는 게 없을 것이다. 이 순간을 잘 지나고 나면 다시 파릇한 봄의 새싹 같은 싱그러움이 묻어나고 자라 여린 잎사귀가 초록으로, 자기의 꽃을 피우며 열매 맺을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 잘 지켜주며 자라나도록 듬뿍 관심을 주어야겠다.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라 그런지 카페라테 위에 그려진 하트처럼 선명하게 여운이 남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