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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y 28. 2023

길 위에서 피어난 작품들

'에드워드 호퍼 : 길 위에서'를 보고


5월의 화사함과 장미향 가득한 날이다. 계절의 여왕에 걸맞게 하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러 초록의 대지에 붉게 물든 장미가 수줍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서울 시립미술관에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를 보러 왔다. 우연히 전시기획전에서 호퍼전시를 알게 되어 사전예약을 손꼽아 기다렸다. 앞뒤로 일이 생기기 전 정확하게 시간이 비는 날이기도 했다.


서소문에서 하차해 골목길을 들어서니 서울시 여러 건물들 사이로 시립미술관이 보였다. 젊은이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전시를 위해 모여드니 시립미술관이 이렇게 붐빈 적이 있던가 싶다. 요즘 핫한 전시라 그런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다. 아들딸에게 전시 소식을 전할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핫 한 전시라니 신기했다.


입장 시간에 맞춰서 발권을 하고 들어가니 긴 줄 사이에 다시 서있다가 팔찌로 바꿔준다. 전시는 2층, 3층, 1층 순서로 진행이 되고 전시관엔 사람이 많았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3)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이자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기획이다. 호퍼의 일대기를 알려주고 드로잉이나 삽화, 노트 등 그를 알려주는 것들이 많았다. 덕분에 호퍼라는 작가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과 스케치 작품들을 보며 왼손잡이가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주로 드로잉엔 오른손을 많이 그린 것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온통 어둡고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는 그림엔 본인의 얼굴을 빛반사한 채 살짝 칠 해져 있어 초기 작품엔 침울하리 만치 어두운 색으로 덮여있었다.


파리로의 여행을 통해 차츰 명암을 이용한 어두운 계단 그림으로 시작해 주위의 밝은 자연을 많이 그리고 사고의 확장이나 시각의 변화를 알려준다. 그 시대는 사진의 발달로 인해 현실을 반영한 그림보단 추상화가 더 많이 그려졌던 시대라 한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현실의 풍경을 그려가며 조금씩 주위의 사물들을 그림에서 단순화하며 치우는 것으로 시각이 발전되고 있다.


그가 지나왔던 발자취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케이프코드 등 작가의 장소를 따라간다. 스케치의 섬세함과 노트 속 기록에 보이는 치밀함도 보여 좋았다. 한국엔 쓱(ssg.com) 배송 광고를 통해 잘 알려져 있는 호퍼는 그의 독특한 구도와 색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광고를 찾아보고 전시회에 얼마나 많은 유명작품이 오지 않았는지 알았다.


에칭이라는 동판화로 흑백 대비를 섬세한 필체로 볼 수 있었다. 관음증을 불러일으키는 창문 안 모습과 더불어 현대인의 외로움, 도시에서 시작한 그림이 자연으로 돌아가면서 밝아지는 색감을 보여주어서 좋았다. 빛의 대비와 풍경 속에 보이는 영화 같은 구도와 장면이 매력적인 작가였다.


시대별로 그의 작품 세계와 삽화를 그려 넣었던 매거진을 통해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결국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의 후기작이라 할 만 한데 밝은 색감과 카메라라면 잡지 않았을 구도 등 그의 독특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달리 어두웠던 초기작에 비해 뒤로 갈수록 원색에 가까운 밝은 색감과 자신감 있는 터치는 보는 눈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아마도 내 취향이 어두운 그림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리라. 여러 영화로 그의 그림에 영감 받은 작품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히치콕 감독의 '사이코'가 대표적이다.


젊은이들이 이토록 문화에 목말라했던가 싶다. 긴 줄에 걸맞은 재미도 있어 일대기를 통해 작가를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케치나 노트 등 숨은 일면도 좋았지만 역시나 전성기의 작품을 많이 보여주었다면 더 좋은 울림이었을 텐데 하는 섭섭함이라고 할까. 푸르른 오월 가져볼 수 있는 문화 충만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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