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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y 26. 2023

여름 초입에 담는 장아찌

오이지를 만들어요.


수업 후 센터 앞 마트에서 오이지용 오이를 샀다. 작년엔 반 접에 만 구천 원이나 되는 가격이었는데 올해는 만 오천구백 원으로 가격이 낮아졌다. 한동안 오이 값이 고공행진을 하느라 최근까지 개당 천 원에 구매를 했는데 반 접 가격이 작년보다 저렴하다. 그래서 사는 김에 오이 한 접과 설탕, 식초, 소주까지 모두 구매를 했다. 소주는 골마지를 없애주는 역할이라 넣으면 좋다.


집에 와 오이를 싱크대에 넣어 살살 씻어 소쿠리에 넣어놨다. 물기를 다 제거하고 좀 마르면 그때 오이지를 만들면 된다. 전엔 옛 방식대로 소금물을 10% 되게 끓여 부어 삭히는 방법으로 만들었으나 소금물을 끓여 뜨거운 국물을 붓는 수고를 해야 다. 전통방식대로 하면 개운한 맛이 있어 누구나 선호하는 오이지가 된다.


요즘엔 설탕, 식초, 소금을 2:2:1로 붓기만 하니 수월하다. 매콤한 맛을 내주려면 청양고추나 고추씨를 넣어주면 칼칼한 맛이 된다. 더구나 양념이 다 되어서 썰어 무치기만 하면 된다. 간을 따로 할 필요가 없고 조물조물 무쳐내는 게 수월하고 맛을 내는데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가끔은 설탕 대신 물엿을 넣기도 하는데 설탕의 양을 줄일 수 있어서 좋다.


여름이면 오이지가 늘 밥상에 올라서 아직도 오이지가 익숙하다. 엄마의 오이지는 무거운 돌로 눌러놓고 쪼글 해지면 썰어 붉은 양파망에 무거운 돌과 도마로 반나절 정도 눌러 놓으면 꼬들꼬들한 식감을 가지게 된다. 난 그런 물기 없는 꼬들한 식감의 오이지만 있는 줄 알았다. 다른 집에선 오이냉국도 해 먹고 그냥도 먹기도 하는 걸 보고선 집마다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냉국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찬물에 썬 오이지를 넣고 설탕, 식초로 간을 하기만 한다. 무슨 맛일까 싶지만 짭짤한 오이지 맛이 여름 더위에 지친 몸에 나트륨을 보충해 주고 시원함을 전해주는 것 같다.


난 꼬들한 오이지보다 촉촉한 오이지를 더 선호한다. 가끔 남편의 힘을 빌려서 손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꼭 짜라고 부탁을 하기도 한다. 역시나 힘은 세지만 요령이 부족하다. 시범을 보이다 결국엔 내가 다시 손으로 국물을 짜낸다. 그런 오이지에 마늘, 파, 고춧가루 조금, 매실액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밥도둑이 된다. 이미 간이 새콤달콤하게 다 들어있기에 그냥 하나 먹어도 충분하다. 참기름 한 수저 넣고 깨를 뿌리면 완성이 된다.


오이지를 담는 계절이 되니 여름의 초입에 들어선 게 실감 난다. 벌써 햇마늘이 나오고 각종 장아찌를 담글 시기가 지나고 있다. 올 한 해는 장아찌와 이별하는 시간이었다. 애써 먹어줄 식구가 없어서 전과 같이 하지 않게 되니 명이나물이며 취, 마늘종, 통마늘, 머위, 방풍 등 전과 같이 장아찌를 담지 않았다. 물론 먹지 않아 김치냉장고에 남아있는 것만 해도 가끔 꺼내 먹으니 양이 줄지 않는다. 식구가 달리 식구가 아니었다.


손이 수고스러워도 애써 조금만 계절에 맞는 먹거리들을 찾아 해야 하는데 전과 같이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더불어 섭식에도 소홀해지니 식구가 같이 모여 앉아 나누는 밥상은 먹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여태껏 몰랐던 식구의 의미를 깨달아 간다. 그래도 올해 여전히 오이지를 담갔으니 여름 나절을 보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원하면 마음껏 무쳐서 챙겨줘야겠다. 그렇게 나는 여름의 초입에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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