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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29. 2023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지는

『H 마트에서 울다』, 미셀 자우너, 정혜윤 옮김, 2022, 문학동네


저자는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 태어났다. 인디 팝 밴드의 가수로 역량을 키워갈 때 엄마의 투병과 상실감, 애도를 보여준다. 언어와 문화 차이, 엄마와 딸,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에 관한 이야기다. 엄마에 대한 서술을 이토록 세밀하고 밀도 있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모습 그대로 기억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


서툰 한국어로 이모에게서 엄마의 체취를 찾고 끈끈한 정을 느끼며 한국의 문화를 가르쳐 준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H 마트에 가서 모르는 노인이 아들과 짬뽕 먹는 것만 봐도 눈물이 나는 걸 보면서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의미와 추억이 있다고 알려준다. 음식은 기억이고 사랑이며 그 사람과 나누는 모든 것이다.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과 때에 맞는 설명, 자기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모든 일들이 다 음식과 관련된 것이다.


옆 테이블 노인을 보면서 우리 엄마가 늙으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는 대목에선 알 수 없는 슬픔이 응축된 기분이다. 늘 한국에 오면 들렀던 이모네도 엄마가 없으니 가는 걸 고민하는 모습은 인간적이게 느껴졌다. 한국에서 중국요리를 먹으면서 바닥 신문지에 음식을 펼쳐놓고 먹던 탕수육, 짜장면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인이라면 겪게 되는 일 아니던가. 방인의 시선으로 함께 한 모든 것이 추억이며 엄마가 없는 지금 보여드렸으면 좋을 현재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음식은 추억이라 한다. 누구와 언제 그 음식을 먹었는지 맛으로 향기와 분위기로 음식을 기억한다. 때론 음식이 사람을 소환할 때도 있다. 즐겨 먹던 찌개나 같이 먹던 사람과 상황, 분위기, 냄새, 나눴던 대화 등 수많은 것들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어떤 음식은 처음 먹을 때의 강렬한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기도 한다.


누군가 달달하고 새콤달콤했던 소스로 바삭하게 튀겨내 버무렸던 탕수육 맛을 잊지 못한다 했다. 그래서 특별한 날엔 맘껏 먹으리라 다짐했다고 하니 음식은 결심을 갖게 하는 매개체다. 하루 동안 얼마나 수많은 음식을 접하고 지내며 향기를 맡는지 모른다. 때론 이웃집에서 스멀스멀 밀려오는 냄새를 통해 감자조림이며 생선구이 등 수많은 냄새로 짐작해 볼 수 있는 추억이 있다. 내가 풍기고 나누고 전했을 수많은 음식과 향기는 맛 이전에 사랑이었다고.


엄마가 투병할 때조차 곁에서 자기의 과업을 씻는 것처럼 돌보고 많은 일을 스스로 헤쳐나갔다. 집에서 결혼하고 엄마의 장례를 치르는 일조차 의식을 치르는 일처럼 보였다. 나 또한 엄마랑 지척에서 수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애증의 관계를 드러낼 때가 있다. 미묘하고 복잡한 하나의 단어로 설명조차 할 수 없는 엄마와 딸의 관계는 서로를 미워하다가도 때론 서로에게 전해지는 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엄마의 엄마로부터 딸인 나에게까지 이어지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는 것처럼.


잣죽을 끓일 때의 섬세한 기억과 김치 담는 성공담은 결혼하며 마주했던 수많은 시행착오가 떠올랐다. 주어진 음식을 먹기만 하던 때를 벗어나 남과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고 만드는 시간을 거치며 비로소 홀로 자립하는 것을 배운다. 이 글은 음식을 통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수많은 기억과 추억을 소환해 울컥하게 한다. 어느 누가 엄마라는 단어 앞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엄마의 희생과 사랑을 바탕으로 자라기에 느끼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있다. 그래서 더 독특하고 정이라는 테두리 앞에 무너지는 것이다.


상실과 무너짐은 작은 것에서 일어난다. 때론 커다란 슬픔보다 일상의 마주하는 작은 일이 힘들게 하듯이.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한 글은 마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음식과 세월 속에 묻어나는 것 같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고 한다. 내가 해 주었던 수많은 음식과 같이 보냈던 시간이 오롯이 소환되고 세포에 하나하나 기억된다면 어떨까. 과연 내 자식에게 어떤 엄마였을까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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