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진단을 앞두고서
건강보험 공단에서 노인 장기 요양에 관한 진단을 하러 방문했다. 몇 가지 간단한 질문과 테스트를 하고 설문을 작성하고, 내게도 이것저것을 묻는다. 엄마는 본인이 정상인 줄, 아무렇지 않은 줄 안다. 엄마는 혼자서 살림도 하고 밥도 챙겨 먹고 매 끼니를 해결한다. 나는 지척에 살면서도 엄마의 끼니를 책임지지 않는다. 가끔 먹거리를 나누고 새로운 것을, 필요한 것들을 조달할 뿐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늘 혼자고 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핑계라면 나는 나대로 바쁘고 내 삶을 살아나가야 함이다.
늘 엄마의 약과 주사를 챙기고 있지만 실제 엄마에게 내가 유용했는지 모르겠다. 남들이 말하는 착하고 좋은 딸이 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간간이 나를 의지하는지 엄마는 본인의 작은 대소사를 내게 의논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본인의 짐을 내게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대부분은 엄마의 말하지 않음으로 인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일이 더 많지만. 가끔은 혼자 벅차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 때늦은 시기 문제를 인식하고 나서 해결하곤 했으니까. 본인의 생각대로 기운만 예전만 못한 줄 알고 있다. 의사는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고 했다. 지금 뇌가 아픈 거라고. 엄마 자신만 아픈 걸 모르고 있다.
몇 일째 엄마 냉장고에 넣어놓은 재료들이 상하고 있는 것을 본다. 엄마는 본인 살림을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 한평생 아끼며 버리는 것을 모르고 살았을 엄마의 입장에선 멀쩡해 보이는 물건을 버리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일이겠지. 오늘도 이런 것들을 버리라고 했지만 알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이 듦은 사람을 위축시키고 더 이상 의욕이 없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엄마의 기운 없고 신나지 않는 일상이 발목을 잡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엄마의 살림을 들어낼까 잠시 고민을 하다 그만둔다. 그냥 이대로도 좋겠다 싶을 때가 있다. 괜스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나의 게으름과 부딪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늘 두 개로 나눠서 싸운다. 함께 병원에 가고 검사를 받는 일만 해도 벅찰 때도 많다. 내 시간이 비는 때로 이리저리 피해서 시간을 잡고 움직여야 하니까. 때론 눈치만 주는 딸인가 싶다. 그런 내게 한없이 미안함을 보여줄 때가 있다. 같은 표정과 말투 속 틈틈이 보이는 생각은 나를 늘 무너지게 한다. 반성을 하고 뒤돌아서도 나는 늘 일상으로 돌아온다. 내 마음의 짐만 더 늘리면서.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신청하는 일은 과정이 더 남아있다. 등급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남들은 내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고 도와주는 줄 안다. 하지만 사십여 년을 넘게 혼자 살아오면서 엄마의 시간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시간도 있다. 경제적인 것이나 엄마의 재산에 관한 것은 나에게 말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물어보지 않는다. 그래서 혼자 해결하게, 혼자서 살림하고 움직이게 돕고 있다. 때로는 혼자라도 움직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다 해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그렇다 해도 더 이상 진행을 숨기거나 늦출 수 없음이다. 지난번 냉장고 정리할 때는 오래도록 힘들게 했다. 엄마와의 부딪힘이 나와 엄마 둘 다 힘들게 한다. 그렇기에 되도록 만지지 않으려 한다. 내게 맡기고 싶지 않은 맘이 더 클 것이다.
옆에서 보고 배운다. 나는 어떤 나이 듦을 선택할지. 누구나 지나칠 수 없고 나이 드는 것은 비켜 갈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을 선택할 수 있다 여긴다. 엄마는 본인이 선택하지 않고 맞닿은 상황이지만 나는 옆에서 보았기에 엄마와 다른 상황을 원한다. 그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나이 듦은 이런 모습이 아니다. 누군들 자식 앞에 그런 모습 보이는 게 유쾌하고 좋을 수만은 없다. 그러니 나는 선택할 수 있을 거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나를 잘 돌봐야겠다 맘먹는다. 엄마의 미래가 이럴 줄은 본인 자신도 몰랐겠지. 아마 엄마의 시간은 본인으로 향하는 돌봄과 자신을 아끼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않은가?
지금 엄마의 상황이 가엽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아름다운 시절에 따뜻한 마음과 눈길로 시절을 즐기면 좋으련만, 전염병 앞에 외출도 자유롭지 못함이다. 어서 자유로이 드나들며 계절처럼, 살포시 드러난 꽃잎처럼 피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