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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찬란함 뒤에 숨겨진

지나가는 봄날의 단상

by 최림



엄마는 나를 낳고 방문을 여니 앞산이 진달래로 덮여 붉게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 시절엔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목련이며 벚꽃이 흐드러지게 자기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런 시간에 내 생일이 들어 있어서 화사하고 우아함을 맛볼 수 있어서 사랑한다. 꽃이 지고 나면 연둣빛 어린잎을 드러내며 피어나는 생명력을 바라볼 수 있다. 남들은 예쁘게 핀 꽃만 좋아하지만 나는 그 뒤에 피어난 속살 같은 생명력이 좋다. 마치 어린 새싹의 자라남을 지켜주고 싶다고 할까.



연둣빛이 모습을 드러내고 5월의 녹음이 되기 전 여리고 꿈틀대는 살아있음이 좋다. 이때가 봄의 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다.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변해감을 보고, 햇살이 창궐하기 전 하늘의 푸르름으로 계절의 익어감을 본다. 더위를 느끼기 전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하다. 봄은 짧다. 어느새 오나 보다 하면 금방 여름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짧은 시간 잠시 가질 수 있는 4월의 찬란함이라고 할까.



아들이 고 2 때 생일 아침이었다. 아이의 등교 후 라디오를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속보가 나왔다.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다가 배가 뒤집혔다고.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나오지 못했다면서 삼백 명이 넘은 아이들과 선생님이 있다고 했다. 내 아이와 같은 나이라 더 마음 쓰이고 가슴 깊은 곳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조금 있다 보니 모두 구출했다는 속보가 떴다. 다행이라고 여기며 더 이상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물론 오보였지만.



한동안 학부모들을 만나도 가슴 아픈 얘기만 했다. 다들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 마음이 아프고 쓰렸으니까. 눈물이 흐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내 생일이라 다 같이 "사랑한다"라며 안아주고 "학교 잘 다녀와라" 엉덩이를 두드리며 보냈는데. 내 자식도 아닌데 가슴이 먹먹하고 한동안 마음이 울적했다.



그렇게 매년 생일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몇 년간 뉴스며 언론의 기사를 보면서 시끄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에서 점점 잊히길 바라면서. 올해로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동안 아들은 대학도 졸업하고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다. 살아있으면 나처럼 좋은 일 보면서 같이 기뻐하고 칭찬하고 안아주며 시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새삼 살아 있으매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숨 쉬고 있음을, 자녀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보내는 일상이라는 시간은 사실 소중하다. 살아있음부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안함이라면 더 바랄 것도 없다. 그런 일상으로 마주하는 것도 축복이라 여긴다. 때로는 지구 반대편의 전쟁과 피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지 않은 것 또한 다행 아닌가. 내 일상의 숨 쉴 수 있는 많은 것들은 가족의 배려고 사랑임을 느낀다.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비워두고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축하의 인사를 하며, 안아주고 따뜻한 말로 전해주고 있다. 사소함에 행복을 느낀다.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맑고 구름 한 점 없이 청아하다. 이런 날을 주셔서 오늘을 살 수 있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 전엔 나의 일상에 감사함이 없었다. 만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사일기를 쓴 뒤 일상의 모든 마주하는 것들이 다 내 마음처럼 눈길이 가고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면 된 거라 여긴다.



나를 사랑해 주는 것은 나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것이다. 내가 늘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다.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음을, 사랑받는 것에 감사하다.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현재 주어진 일상을 함께 나누어야겠다. 내가 받고 나누었던 행복은 그 시간 아름답게 빛나고 시간이 흘러도 남아있을 테니까. 일상의 소중함과 더불어 아름다운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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