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하나의 불꽃을 안고 간다. 그 불꽃의 열기를 타오르게 하는 것은 작은 성냥불 같은 것이다. 불을 붙이고 나를 태우고 심지에 불꽃이 일게 하는 것. 그것을 시작했다. 심지어 내게 불꽃이 있는 줄도 몰랐다. 타오르려 하는 심장이 있는 줄도 모른 체 살아갔다. 누구든 심연의 물을 길어올 리 듯 자기의 불꽃이 타오르게 하여야 한다.
쉬지 않고 하루에 한 꼭지씩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10월 이후 내게 굳어진 루틴 같은 것이다. 늦은 저녁 아무리 힘들고 일이 많아도 그날의 루틴을 물리치진 않았다. 어느 하루 바쁘지 않은 날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매일 글쓰기를 멈출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힘들어도 써 내려갔다. 매일같이 해내야 하는 일이라 여겼고 일찍 잠자리에 들거나 거르게 되었을 땐 새벽에라도 일어나 그날의 일을 마무리하곤 했다. 이유가 어쨌건 그날의 일을 마치는 것은 밥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다. 밥은 가끔 바쁘거나 입맛 없을 때 건너뛰거나 간단하게 대체 가능하지만 글쓰기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화장실을 못 갔을 때의 찜찜함이라고 할까. 참을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인데 내 글쓰기는 그랬다.
그렇지만 내가 진솔하게 나를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온 마음과 힘을 다 쏟아서 쓴다고 하지만 내 글에 반응을 해주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브런치도 망설이다 3~4개월이나 지나서 시작을 했고, 글을 올리고, 올릴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다른 일이기에. 내 어리석고 부족하기만 한 글은 사람의 반응을 그리워했나 보다. 식구와 친구, 문우들의 반응과 나를 응원해 주는 말에 힘입어 시작한 글쓰기. 겸손해서도 잘 쓰는 것도 아니지만 글 쓰는 행위는 내 지난 시간에 대한 정리요 치유였다. 나도 모르던 내 상처와 억눌렸던 기억, 내 마음을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비로소 나도 뭔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발효를 하듯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고, 내 지난 시간은 억울하거나 힘듦으로만 치장된 건 아니었다. 때로는 내 마음도 모르는 게 있었고 그때마다 멈춰 서서 들여다봐야만 했다. 그런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나'라를 사람이 선명해지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도 될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약간은 지난 시간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슬며시 고개를 들곤 한다. 남들 같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비교하거나 난도질당하지 않아도 되고 그렇게 지천명이 된 내 삶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약간의 우월감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 지난 시간에 대한 자만심 또는 자녀들에 대한 만족감과 자긍심이 엉겨진 마음이었을 테니까. 아이들의 독립은 또 다른 문제였다. 원치 않게 일찍 찾아온 부부만의 시간이 있었고 내 외로움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으니까.
우리는 많은 시간을 혼자서 보내게 된다. 앞으로 더욱 그런 시간이 늘어나고 많아질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나와 만나고 보낼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까. 어떤 미래를 꿈꾸고 살고 싶어 했을까 하면서. 지금부터 하나씩 그려보고 생각하며 실행해 나갈 내 미래. 어떤 내가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모르던 내 불꽃은 아직도 살아서 꿈틀 거린다.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내 마음과 열정, 깊은 심연의 길어 올려야 할 내면의 말들과 살아 있는 무언가가 싹을 틔우고 있음을 본다. 오랜 시간 잊어왔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마음. 나는 그것을 불꽃이라 명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불꽃을 살리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성냥을 긋고 마음을 달구며 연료를 준비한다. 그래야 더 오래도록 내 맘을 들여다보고 살릴 수 있으며 키워낼 수 있으리라 여기기에 오늘도 루틴을 이행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