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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가 피어나는 계절

아까시 향내 나는 시절

by 최림



코끝에 달큼한 아카시아 향기가 난다. 향긋하고 익숙한 향내에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는다. 알고 보니 키가 너무 커서 눈길 닿는 가까운 곳에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럼에도 간질이듯 익숙한 향에 취해 돌아보니 바람 따라 실려온 향기에 가슴이 콩닥 거리고 행복함이 젖어든다. 우리가 아카시아라고 알고 있는 나무는 실상은 아까시 나무라고 한다. 처음 우리나라에 알려진 때부터 잘못 알려져서 아카시아랑 헷갈리게 되었다고. 그래서인지 약간 입에 익은 아카시아가 훨씬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다. 안산은 오월 중순이 되니 하얗고 약간 베이지빛이 도는 아까시 꽃이 주렁주렁 나무 끝에 매달려 바람에 떠밀려 사람을 유혹한다.



날은 서늘하고 햇살은 따사로우며 달콤한 아까시 향기가 코끝을 스친다. 벌써 오월 중반으로 접어들었으니 당연하다. 곧 꿀을 따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향긋하고 달큼한 향에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게 된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으로 흰 별들이 촘촘히 박혀서 아까시 향이 더 진동한다. 벌이 많이 없어져서 걱정이라는데 산에선 산짐승을 보는 일은 가끔 있지만 최근 벌은 본 기억은 없다. 우리도 벌이 있는지 없는지 걱정해야 하는 세상에 사는 것일까.



온통 햇살에 통과하는 빛들이 초록으로 물든다. 햇빛이 투과되는 곳에는 연둣빛이, 그 옆 그늘진 곳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넘실댄다.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계절의 진귀함이 다 있다. 초록을 좋아하는 나는 빛깔 따라 변하는 태도도 좋거니와 눈에 담아도 자극적이지 않고 신선함이 살아있는 초록과 연두 빛깔 중간 그 어디쯤 되는 색을 사랑한다. 햇살에 피어나고 반짝이는 물결치는 싱그러움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생경하지 않고 늘 살아있는 빤짝임처럼 그렇게 빛나는 색이라고나 할까. 내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한 착각을 가져온다.



오늘도 시간이 있어서, 내 두 다리로 힘 있게 걸어서 다녀올 수 있음에, 씩씩하게 숨 쉴 수 있는 지금이 좋다. 숨을 헐떡이며 산의 절반밖에 오르지 못하고 시작했던 몇 년 전의 나보다 더 젊어지고 세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싱그러운가. 나도 마치 이 계절의 일부가 된 듯하다. 유난히 맑고 티 하나 없는 하늘이 나를 반겨주는 듯하다. 오를 때마다 만나는 하늘이고 풍광이지만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롯데타워 저 멀리까지 뚜렷이 내다 뵈는 풍경은 얼마 볼 수 없는 진귀한 시간이다. 오늘이 그런 시간이었다. 맑고 푸르러 드높게만 쳐다보게 되는 그런 하늘. 맘껏 내 눈과 카메라에 담아본다. 오래도록 앉아서 바라보고 담뿍 느끼며 내려온다.



이런 시간들이 허락되어서 감사하다. 살랑이는 바람에도 빛나는 나뭇잎에 흔들리는 시간들이 아름답게 빛난다. 그런 시간에 산에 오를 수 있고 지나가는 모든 풍광과 사람들이 아름답게만 보인다. 내 마음이 그런가 보다. 답답하지 않고 깨끗한 하늘을 본 탓일까. 아님 내가 그런 마음 이어서일까. 시간 내서 일정한 시간 나를 돌보고 가꾸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만 충족되어서는 안 된다. 누리고 싶고 그 시절 가져야 했던 많은 생각과 자연을 맘껏 가지는 것 또한 내게는 필요함을 안다. 뭐라고 이런 것도 하나 모르고 땅만 쳐다보고 높은 이상만 생각한다면 과연 살아있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마음 가득 만족감과 감사함, 행복함을 가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산다는 것은 매일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 주어지고 할 일과 역할이 주어진다는 거겠지. 나는 그 자리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얻고 생각하는지 내 결정에 달려 있다. 마치 점심 메뉴를 결정하는 것 마냥 그런 선택일 수 있다. 만족할 수 있는 선택이었기를 바라본다. 살아내는 것일 수도 있고 살아지는 것일 수도 있는 인생이지만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내 시간이니까. 내게 주어진 또 다른 선택일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내 시간을 그렇게 보내며 하루하루 채워나가고 있다.



아까시 향내가 아직도 내 맘에 뿌려진 듯 향긋하다. 익숙한 꽃향에 마음이 풍성하게도, 아름답게도 하며 여유롭게도 하나보다. 온 천지가 피어나고 자라며 자기의 기운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때 내 마음도 온전히 피어난다. 그러니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비록 휘몰아치는 감정과 현실 앞에 굴복당하는 시기가 오더라도 의연히 맞서며 천천히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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