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은 의대 본과 4학년이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 얘기로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워보았다. 긴 코로나로 모임이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마지막으로 얼굴 보고 담소 나누었던 시기가 많이 지났다. 근처에 살기도 하지만 친구가 취직을 해서 전과 같이 마주하며 차 한잔 할 여유가 없기도 했다. 오래도록 연락을 해봐야지 하면서 벼르던 찰나 출근하면서 톡을 보내왔다. 난 수업 중이라 늦은 확인을 했고 각자 시간에 쫓기다 밤이 되어서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친구가 꺼내 놓은 이야기보따리 속 일상은 자연스럽게 자녀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고등학생 때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에 서로의 자녀에 대해 대략적인 진행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덧 본과 4학년이 되었단다. 하긴 우리 애는 벌써 졸업 후 취직을 했는데 시간은 나만 흐르는 게 아니었으니까. 드라마 같은 본과생의 이야기와 환자들 얘기, 수술방 얘기,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특별한 수술 경험, 관찰 이야기 등 모든 것이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외과를 염두에 두고 있는 아들은 응급의학과를 희망하고 있다. 부모의 맘엔 그래도 좀 편하고 덜 힘든 데 보내고 싶은 맘이 있을 텐데 언뜻 그런 마음을 비치니 하는 말.
" 아들 의예과 보냈으면 그런 맘 가지면 안 되지, 엄마."
그 말에 맘을 내려놓게 되더란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을 가지면서 좀 덜 힘들고 좋아 보이는 과가 어디 있을까. 아들은 그래도 눈만 보거나 피부만 보는 등 한 곳만 집중적으로 보는 그런 과보단 몸을 쓰고 전체를 다 만지고 하는 그런 과에 마음이 가나 보다. 외적으로 힘든 여건에도 되려 가슴이 떨린다고 하는 걸 보니 내 아들도 아닌데 듣기만 해도 맘이 짠해진다. 자녀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알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연을 이어오는 친구와 아들. 되려 아들들보다 엄마인 나와 친구가 더 친숙하다.
새삼 자녀들의 성장과 그들이 선택하고 꿈꿔가는 세상이 더 흥미진진해진다. 담담하게 아들의 선택이라면서 조용히 지지해 주는 말을 건넨다. 몸이 고달픈 선택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얼마나 아련할까. 부모의 맘은 좀 다를 텐데, 자식 걱정하는 한결같은 부모 마음이야 누군들 같지 않겠는가.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하지만 어디 그럴까. 한동안 여러 과를 돌면서 본과생으로 참관만 하고 약간의 보조 역할만 한다고 한다.
외과에 들어가서 신생아 탈장 수술을 한 얘기를 들었다.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신생아 수술이어서 많은 관계자가 지켜보는 수술이었다고 한다. 조산아여서 아기 몸도 꼭 손바닥만 했단다. 신장이식 수술을 공여자에게 가서 적출하고 다시 와서 이식하는 것까지 본 얘기, 심장을 직접 만지고 떨리는 박동을 느껴본 일, 그리고 응급과의 수술 등 모든 일이 생경하고 듣기만 해도 신기하다. 아들도 한동안 하이톤에 들떠 있었다며 마치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야기라고 여겨질 만큼 새롭다. 그런 새로운 세상의 얘기를 전해 들을 수 있어서 반갑다.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오랜만에 듣는 친구 소식에 내 소식도 전해 본다. 아들들이 다 잘 풀리고 좋은 선택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빛내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니 서로 축하해 줄 일만 있다.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로 감동받고 궁금하고 더 알고 싶은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내가 아닌 남의 이야기에 흥분하고 새로움을 맛보는 일. 나는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나 보다. 늘 따뜻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와 더불어 그의 자녀들이 새로운 선택을 앞두고 있다.
친구의 이야기에 담뿍 축하해 주었다. 계속 가슴 뛰는 선택을 할지 그의 앞날이 궁금하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생을 살아갈지 전해 듣는 이야기에 아들의 미래가 보였다고 할까. 자기의 자리에서 빛나는 삶을 살아갈 그에게 경의와 함께 축복이 내려지기를, 그리고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이 밤 그에게 모르는 이의 목숨과 생명을 맡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그들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역할이 주어질 때 부디 그의 선택이 후회가 없기를, 나아가 좋은 의사로 자리매김하기를, 자녀들의 앞날이 빛나는 선택이기를 조용히 이 밤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