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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l 15. 2022

체리와 남자 친구

여름이면 생각나는 과일


여름의 열기가 더해가던 주말 오후였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사귀던 남자를 소개하려 63 빌딩으로 향했다. 집으로 부를 생각은 못 한 채 밖에서 보자고 해서 마련한 자리였다. 난 엄마랑 좀처럼 타지 않던 택시를 고 이미 도착해 있던 그는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첫 만남의 자리에 그는 구겨진 셔츠 차림의 까무잡잡한 얼굴로 단정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엄마는 처음 본 그의 모습에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단다. 위엄 있거나 남들보다 기골이 크지도 않으며 세련됨도 없던 그를 보자 엄마는 마음이 떨어졌을. 아빠 없이 나를 키웠기에 남들 보기에도 장대하고 내세우기 좋은 그런 남편감을 기대했나 보다. 엄마 기준에 한참이나 모자랐던 남자 친구는 그날 처음으로 마주 했다. 가장 비싼 63의 양식당으로 안내했고 그렇게 창가 좋은 자리에서 식사를 했다. 스테이크를 먹고 마지막 커피와 과일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과일로 나온 체리를 정말 맛있게 드셨다. 남자 친구는 서빙하는 직원을 부르더니 체리를 좀 더 가져다줄 수 없느냐 물었다. 그때 체리는 보기 쉬운 때도 아니고 백화점에도 늘 있는 품목은 아니라 나도 그날 처음 먹어봤다. 한 접시 가득 담아 온 체리를 먹고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내가 기억하는 그곳엔 체리가 있었다.



살면서 남들이 해주는 밥은 별로 감흥이 일지 않았다. 그들의 정성과 사랑에 대한 마음보다 입맛에 맞는지의 여부로 판단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 속 처음 먹었던 체리의 달콤함과 씁쓸했던 그날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았다. 하지만 그날을 곱씹어 보면 엄마는 나보다 남편의 마음 씀씀이에 더 만족했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더 이상 그날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렇게 가족이 되어갔다.



나도 젊을 땐 남들을 초대하고 상을 차리고 초대 요리를 했다. 특별한 메인을 만들고 배운 요리를 맘껏 솜씨 부려 색색 오감을 만족하는 메뉴를 짜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내가 그랬듯이 남들도 입맛에 맞았을까 싶다. 기억에 남는 그런 음식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답이 돌아온다. 남을 위한 음식엔 귀한 것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어야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하고 바빠도 본질에 충실하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체리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되면 그때가 떠오른다. 처음으로 느꼈던 당황했던 마음과 그날의 기억도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살면서 음식으로 떠올리는 흔치 않은 기억도 있다. 그날 내가 느꼈던 상대를 대하는 마음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남을 대하는 마음을 배운 계기였다.



시장에 체리가 한창이다. 한 팩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남편과 그때의 일을 안주 삼아 체리를 올려놓고 말해보리라. 그때 왜 그러고 나왔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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