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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16. 2022

아무것도 아니지만 도움 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레이먼드 카버, 2007, 문학동네


"운이 다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면, 한 사람을 꺾어버리고 내팽개치는 어떤 힘 같은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생일 케이크를 준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케이크라는 상징성은 좋은 일이나 축하받을 만한 일에 등장하는 음식이다. 파티를 위해 주문했을 특별한 모양의 이름이 새겨진 케이크, 받고서 좋아할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기쁜 마음이다. 그런데 아이가 생일날 아침 학교를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갑자기 찾아온 비극에 부모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는 가벼운 뇌진탕이라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아이는 깨어나지 않고 검사만 계속 진행되었다. 병원의 모습은 동서양이 똑같다. 물론 발견하지 못한 다른 원인을 찾기 위한 방법일 수 있지만 불안감만 가중시킨다. 부모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누군들 그러한 상황에 입맛이 있으며 잠시라도 아이 곁을 떠나고 싶을까. 자녀가 아프고 사고를 당했다면 부모는 제정신일 수 없다.



앤이 집에 가려 병원을 나설 때 보던 가족의 모습에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칼에 찔려 수술을 한다는 이유였으나 돌아와 보니 죽고 없었다. 불행은 모두 꾸러미로 함께 밀려드는 걸까. 아이를 병원에 놓고 오는 심정이 어땠을까. 아이를 부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나라면 제정신이었을까? 사흘이나 병원서 지내며 아이의 생사 여부를 간절히 기도했을 그 마음은 누구에게라도 화풀이 상대가 필요했다. 마침 케이크를 찾지 않았다고 사흘간 전화를 해댄 빵집 주인이 있었다. 당장 달려가 화풀이를 해댔다. 울분을 토해내고 울며 발악을 해댔다. 그때 진심 어린 주인의 사과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꾼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알지 못했지만 다른 이의 불행에 미안한 마음을 전했고 따뜻한 커피와 시나몬롤 빵을 가져왔다. 막 오븐에서 꺼내 계피 향 가득한 달콤한 롤빵은 식욕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 되는' 일은 이때 일어난다. 파티를 위한 음식과 만들었던 케이크 이야기 속에 빵이 가진 특별함이 있다. 다른 이의 축하를 위한 케이크 만드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것을, 그런 일이야말로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알려준다. 검은 흑빵을 자르고 삼키며 햇살처럼 마음에 위안을 얻는다. 정말 별거 아닌 일들이 그들을 위로하고 슬픔에서 빠져나오게 도왔다.



유독 이야기를 읽으면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올랐다. 맥락도 다르고 슬픔을 대하는 태도나 글의 구조도 다르건만 왜 생각났을까. 음식으로 위안받으며 같이 나누는 손길에 스며든 따스함이 있다. 살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잔잔한 기쁨을 발견하듯이 아무것도 아닌 시나몬롤 빵 하나로 위로받고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스르르 풀어지는 마음. 그런 것이다. 살면서 대단한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슬픔을 치유하는 잔잔한 위로를 맛보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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