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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ug 13. 2022

누에고치 모습을 하고

관찰기


"당신은 동급 최고지!"

"왜 그러실까?"

"뚱뚱하고 못생긴 마누라랑 사는 남자들 불쌍해."

"내 맘 알겠지?"


늘 이렇게 우린 투닥거린다. 남편은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친구들과 안산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서 조식에 커피 한 잔 하고 들어온다. 그게 주말의 루틴으로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어김없이 집에 들어서면 그때부터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선 고치를 만드는 애벌레 마냥 꼼짝도 안 한다. 때 되면 밥 먹고 커피 내려주면 마시고 나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집에 아이들이 북적일 때야 잔소리도, 싫은 말도 했지만 지금은 내 일만으로도 벅차 별말 없이 지나간다. 어쩐 일인지 오늘은 영화 보러 가자신다. 그럼 보고 싶은 영화를 검색해서 예매하면 좋은데 나보고 하라며 미룬다. 통신사 쿠폰에 카드 할인까지 받아 예약니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 자기는 할 줄 모르니 내가 해야 한다면서 칭찬 아닌 칭찬을 한다.


가만히 으면 말로 하는 립 서비스를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내가 고래가 된 것일까. 요즘에야 빨래를 널면 "이런 걸 왜 혼자서 하냐" 힘껏 털어준다. 덕분에 난 손쉽게 빨래를 널고 다른 일을 하러 간다. 주말이면 재활용과 쓰레기를 정리해 버려 주고 가끔 설거지도 잘해준다. 식구들 모두 모여 밥 먹고 난 후의 설거지는 곧 남편의 몫이 된다. 그렇게 가끔 나도 남편의 혜택을 보고 있다.


누에고치 마냥 방에 누워 잠든 모습을 보니 지난 세월이 스친다. 날마다 일중독자 마냥 그렇게 일밖에 모르는 삶을 살았다. 신혼부터 아이를 낳고 키울 땐 원망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는데,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어느새 측은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다. 한동안 염색을 하지 않아 흰머리가 반이나 덮이고 머리끝 염색약이 옅은 브라운을 띠고 있다. 평소 염색을 싫어해 주기를 놓치는데 주말에 한번 해주어야겠다.


지나온 세월은 함께 보낸 시간이라 말하는 거 같다. 인생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자녀를 키우고 함께 울고 웃던 나날이었다. 서로에게 향하는 신뢰와 의지, 때로는 기대며 살아온 시간이었다. 지난 세월에 비해 앞으로 둘이 보낼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나면 그제야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보낼 수도 있다. 그전에 남은 시간을 잘 지낼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달려오기만 한 시간을 뒤로하고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때가 다가온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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