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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Jul 24. 2022

삶이란 무엇일까?

'여자는 슬펐다'로 시작하는 글


여자는 슬펐다. 삶이란 무엇일까. 주어진 기간 동안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할 길이다. 그런 시간 앞에 자신을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그녀는 요새 정신이 아득하다. 남들이 어떻게 말하든 그녀의 상태는 본인이 잘 안다고 생각한다. 자꾸 깜빡하고, 가스불에 얹은 냄비를 끄지 않고 나가서 멀쩡한 냄비가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모조리 탄 냄비와 주전자뿐이다. 아무리 닦아내도 검은 바닥이 일어나고 베이킹 소다나 식초물에 끓여라 알려 주지만 별반 차이를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오늘이 어느 날인지 모르는 듯하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가늠이 안된다. 가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날짜 가는 것을 챙기지만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기 일쑤다.



"엄마, 손."

"왜? 약 먹었어."

"아냐, 손."



매일 딸이 들러 약을 챙겨준다. 조금 전 먹었는데 안 먹었다며 자꾸 손에 쥐여주는 통에 하루에도 2번씩 먹는 일이 부지기수다. 당뇨 주사도 그렇고 약물 스티커도 그렇다. 그녀는 실랑이하기 싫어 다시 맞곤 하지만 안 먹었다며 증거를 들이대는데 매일 놓고 있는 주사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잔소리 듣기 싫고 걱정하는 딸의 소리가 안타까워 그냥 다시 약을 먹고 주사를 맞는다. 그런 마음을 알아줄까 싶기도 하고. 어제가 주일 같은데 오늘이 주일이라 하고 시장엔 언제 갔는지 생각이 안 난다.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그녀가 돈을 빌렸는데 얼마였더라? 돌려줘야 하는데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장마철이라 집이 눅눅해서 에어컨을 켜려 하는데 리모컨이 말을 듣지 않는다. 딸에게 안된다고 했더니 예전에 버린 텔레비전 리모컨이라며 에어컨용 리모컨을 찾아준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서랍에 잘 모셔 두었는데 이유가 있었나 보다. 문을 닫고 창틀의 먼지를 모두 닦아야 한대서 딸이 팔을 걷어붙인다. 그녀가 창틀을 닦는 동안 딸은 안방을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녀가 그렇게 만지지 말라 했건만 결국엔 딸의 손을 빌리게 됐다. 자기 일만으로도 힘들 텐데 고생이 많다. 그럼에도 할 건 다하는 딸이 고맙기도 하고,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녀는 왜 이러는 걸까.



그녀가 젊을 땐 일상을 살아내는 게 힘들기만 했다. 자식을 먹여야 하고 아무것도 없는 살림에 살아가기 급했다. 지금은 돈도 있고 지낼만한데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 자꾸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날짜 감각이 없다. 올해 한 번도 미용실을 안 간 것 같은데 며칠 전 딸이 머리 어디서 했냐고 묻는다. 정말이지 한 번도 안 간 것 같은데 딸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건 무슨 일인가. 매일 끼니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을 청하지만 쉽게 들지 않고 잠들어도 깨어나기 일쑤다. 그러면 밤새 뒤척이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런 밤이 싫고 힘들다. 혼자의 삶은 쉽지만 않다. 그녀의 하루는 그렇게 지나간다. 에어컨을 켜니 세상 시원하긴 해도 추운 건 싫어 이내 리모컨을 끄고 잠을 청해 본다. 오늘은 잠들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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